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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건의 완벽주의 숨쉬는 단조 아이언의 정수

역사상 골프 공을 가장 잘 친 선수는 벤 호건(1912~97)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몇 가지 전설이 있다.

경기 도중 호건은 캐디에게 자신이 낸 페어웨이 디벗 자국을 정교하게 보수하라고 했다. “왜냐고? 내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칠 거니까.”

연습라운드 파 3홀에서 동반 경기자가 “몇 번 아이언으로 쳤느냐”고 물었다. 까칠한 성격의 호건은 여러 개의 아이언으로 볼을 그린에 올리고는 “아무 거나 쳐도 된다”고 했다.

호건은 완벽주의자였다. 용품에도 매우 예민했다. 1953년까지 용품업체 맥그리거의 계약 선수였다. 맥그리거에서는 호건의 이름을 단 아이언을 만들었는데 호건은 그걸 안 썼다. 싸구려 제품이어서다. 그는 맥그리거의 최고급 제품인 토미 아머 시리즈를 썼는데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회사와 티격태격하다가 고향인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자신의 이름을 단 클럽회사를 차렸다.
54년 첫 제품이 나왔는데 약간의 결함이 있었다. 호건은 전량 폐기했다. 고쳐서 팔 수도 있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폐기한 물량은 10만 달러 상당으로 꽤 큰 액수였다. 이 일로 동업자와 관계가 틀어져 새로운 투자자를 구해야 했다. 가수 빙 크로스비와 뉴욕 양키스 구단주인 댄 토핑 등이 벤 호건 컴퍼니의 주주가 됐다.

55년 벤 호건은 US오픈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무명 선수가 마지막 4개 홀에서 버디 2개를 잡고 호건과 타이를 이뤘다. 이 선수는 아이오와주에서 온 잭 플랙이었다. 호건과 플랙은 공통점이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100여 명의 선수 중 두 선수만 벤 호건 클럽을 썼다.
플랙에게 벤 호건은 우상이었다. 호건 클럽을 갖고 싶어 포트워스까지 찾아왔다. 호건은 포트워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플랙이 참가할 수 있게 해줬다. US오픈 대회장에 벤 호건이 웨지를 직접 전달하며 격려도 했다.

플랙은 연장전 끝에 호건을 누르고 우승했다. 크리스천인 플랙은 US오픈 기간 중 우승할 것이라는 천사의 음성을 두 번이나 들었다고 증언했다.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그건 호건의 클럽과 호건의 격려였는지도 모른다.

벤 호건은 이후 메이저 우승을 하지 못했다. 몇 년 후 “플랙에게 클럽을 만들어준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벤 호건 클럽을 쓴 두 선수의 드라마틱한 연장전 때문에 벤 호건 클럽의 명성은 올라갔다.

호건은 현대 스윙을 완성한 선수로 평가된다. 호건처럼 호건 클럽은 뛰어났다. 80년대까지 단조(해머로 쇠를 두들기는 공법) 아이언을 휩쓸었다. 특히 70년대 나온 에이펙스(APEX·꼭대기) 아이언은 단조 아이언의 정점으로 꼽힌다. 호건의 성격처럼 호건 클럽은 까탈스럽다. 어렵고 비쌌다. 호건은 치기 쉽고 싼 주조(틀에 넣어 찍어내는 공법) 캐비티백 아이언을 ‘흉측한 괴물’이라고 여겨 전통적인 머슬백 디자인의 단조 클럽만을 고집했다.

호건의 영향력이 사라진 후 회사는 캐비티백(헤드 뒷면에 빈 공간이 있는 것)도 만들었다. 그러나 단조의 전통은 지키고 있다. 클럽은 캘러웨이가 인수했으나 2007년 이후 제품을 내지 않는다. 벤 호건 매니어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최우열씨는 “완벽을 추구한 호건은 클럽도 그렇게 만들려 했다. 호건 클럽이 역사상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정신은 최고이며 아이언의 마스터피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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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