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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사랑도 ‘앙코르’를 외친 사람들

얼마 전 베를린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 도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정신적 중압감 때문인지 혹은 신체적 피로 때문인지 그는 중간중간 악보를 잊어버리고 여러 번 틀린 음을 치는 등 실수투성이로 음악회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짐짓 화난 표정으로 무대에서 퇴장한 그가 청중의 예의적 박수에 바로 재등장하더니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예정에 없던 곡들, 즉 ‘앙코르’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곡에 대한 반응이 호의적이자 바로 다음 곡, 더욱 반응이 좋자 몇 곡을 연거푸 더 연주했습니다. 본 프로그램에 시큰둥했던 청중은 점점 그의 연주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결국 음악회가 끝난 후 청중은 “훌륭한 음악회”라고 감탄하며 집에 돌아갔습니다.

‘앙코르’라는 단어는 ‘다시 한번’이나 ‘조금 더’를 뜻하는 프랑스어지만 음악회에선 본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청중의 박수가 잦아들지 않으면 연주자가 무대에 재등장해 임의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연주자들은 이 행위를 생략하기도 합니다만, 바렌보임 같은 이들은 이것이 음악회의 성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는 본 연주가 모두 끝나고 곧바로 무대에 다시 나와서 3∼5분 남짓한 쇼팽의 연습곡, 왈츠, 폴로네즈, 멘델스존의 무언가 등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 걸 사랑했습니다. 이것을 안 청중 역시 그의 음악회에서 ‘진짜 마지막 곡’인 마누엘 드 파야의 ‘Danza del fuego’를 듣기 전까지는 박수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역시 앙코르 연주의 대가였습니다. 몇 번째 앙코르인지 청중을 향해 손가락을 펴서 가리킨 다음 무대에 앉자마자 연주를 시작해, 마지막 음의 여운이 다 사그라지기도 전에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피아노 위에 올려 놓은 행커치프를 집어 들며 일어서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음악회의 하이라이트였죠. 동시대에 뛰어난 음악가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가 80대까지 다른 연주가들의 평균 3배가 되는 연주료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이유는 이렇게 누구보다 성공적인 쇼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청중 입장에선 예정에 없던 연주는 마치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청중의 만족도와 직결되는 이 이벤트는 1800년대 음악의 수도라 불리던 빈에서 시작된 전통입니다. 당시의 공연기획자들은 급기야 네댓 명의 청중을 동원해 각기 다른 자리에서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지르며 꽃을 던지게 했다죠. 그러면 하우스는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고 기획자는 연주자가 몇 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느냐로 몸값을 정했습니다.

사실 연주자의 입장에서 앙코르 연주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본 연주회가 끝나 긴장이 풀리고, 감정은 몹시 흥분되어 있고, 근육은 피곤한, 그야말로 몸과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시간이 바로 이 앙코르 타임입니다. 제 경우만 해도, 평소에 머릿속에 외우고 있던 그 수많은 곡들은 다 어디 가고 막상 청중이 앙코르를 요청할 때는 무슨 곡을 연주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막상 생각나는 곡을 아무 곡이나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금방 다른 더 좋은 곡이 생각나서 아쉬워하는 일도 태반이죠.

게다가 무대에서 퇴장하는 순간에 박수가 조금 잦아들거나 하면 극도로 소심해집니다. 괜히 앙코르를 연주했다가 집에 가고 싶은 청중의 원망을 듣는 것은 아닐까, 잘 연주한 본 프로그램의 인상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짧은 순간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실 음악가와 청중이 직접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앙코르 연주는 음악회의 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반이라도 선사할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이기도 하고요.

매 공연에 여자 소개를 계약 조건으로 내걸 정도였다는 세기의 ‘우머나이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그는 80대의 적잖은 나이에 30대의 영국 여인 애너벨과의 동거를 위해 처자식을 떠난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호사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연주자가 정해진 프로그램을 다 연주했다고 해서 음악회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제 겨우 지루한 부분이 끝난 것뿐인데! 진정한 재미는 바로 이제부터가 아니겠소? 바로 ‘앙코르 타임’!”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뉴욕필과 협연하고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음악 듣기와 역사책 읽기를 피아노 연주만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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