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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을 바꿔라

1970년대 중반만 해도 국가대표 축구경기나 권투시합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는 집 마루에 모여 앉아 흑백 브라운관을 보며 함께 열광했다.

이른바 ‘N-스크린’ 시대로 불리는 요즘, 집집마다 TV는 물론 컴퓨터 모니터와 전자액자 등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있고 개인별로도 휴대전화와 게임기 등 다양한 스크린을 가지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간 TV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두께는 채 1cm가 되지 않으면서도 실물과 유사한 수준의 해상도와 3차원(3D) 입체화면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가전기업의 위상과 글로벌 산업 판도도 급변했다. 국내 최초의 TV는 1966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개발한 진공관식 19인치 흑백 TV다. 당시 TV 한 대 가격이 쌀 27가마와 맞먹었다고 하니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50만원에 달하는 사치품이었던 셈이다. 초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TV 원천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RCA였다.

이후 컬러TV 시대가 열리면서 소니를 비롯한 일본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는 동안 우리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00년을 전후로 TV기술이 한 단계 더 진화하면서 PDP, LCD TV가 출시되는 격변기에 비로소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2006년 삼성전자가 세계 TV시장 1위에 올랐고, 2010년에는 삼성과 LG가 각각 21%와 14.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TV 산업에서 우리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보다 게임의 룰을 바꾼 데 있다. 과거 TV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이나 모델이 수년에 걸쳐 통용되는 수명주기가 긴 사업이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화면 크기를 확대하고 HD, 풀 HD, LED, 3D 등 신기술이 적용된 모델을 거의 매년 출시하면서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쌓아나갔다. 앞선 기술로 무장한 빠른 신제품 출시는 많은 경쟁사들을 낙오시켰고 산업 통합을 유발했다.

둘째 성공 요인으로는 과감한 투자와 산업 전후방 통합을 들 수 있다. 업체별로 각자 자사 제품에 들어갈 브라운관을 만들던 시절과 달리 오늘날 TV 제조사들은 후방의 LCD 패널 산업이 공급하는 표준화된 패널을 바탕으로 조립생산을 하고 있다. 한국은 일찌감치 일본과 대만의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차세대 대규모 생산 라인에 투자를 집중했다. 그 결과 글로벌 LCD 산업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TV시장을 주도할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들이 특히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앞으로 5년을 내다보면 TV산업은 또 한 번의 기술 혁신과 시장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의 상용화와 대면적화는 화질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인터넷과 연결되면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TV가 스마트 기기로 진화할 것이다. 2011년 전 세계 TV 판매 규모가 2억 대를 넘어서는 가운데 전체의 20%가량은 스마트TV가 될 전망이다.

스마트TV 시장에서의 성패는 고객 니즈에 대한 맞춤형 대응에 달려 있다. 그 밑바탕에는 창의성과 다양성이 깔려 있다. 규모의 경제와 과감한 투자라는 지금까지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없다. 스마트폰 부상에 대한 한 발 늦은 대응으로 잘나가던 휴대전화 사업 성과가 주춤했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각과 준비된 역량으로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지배적 위치를 이어가길 바란다.



송기홍 1992년 프록터앤드갬블(P&G) 브랜드매니저, 96년 맥킨지 시카고오피스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2007년 모니터그룹 아·태 대표를 지냈다. 연세대 졸업 후 하버드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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