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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법의학 권위자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

법의학자가 등장하는 영화·드라마가 인기다.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 최근 종영한 SBS ‘싸인’이 대표적이다. 법의학으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형사 사건은 현실에서도 흔히 세간의 주목을 끈다. 이런 현상을 법의학자라면 어떻게 볼까. 국내 법의학계 최고 권위자로 지난해 과학수사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윤성(58) 서울대 의대 교수를 21일 만났다. 그는 1986년 이후 법의학 교수를 하고 있다. 검시(檢屍)가 전문분야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그의 저서 『법의학의 세계』가 최근 7쇄를 찍었다. 그는 법의학에 대한 관심을 반기면서도 “법의학을 과신하는 것, 몰라서 법의학을 무시하는 것 모두 문제”라고 말했다.
 






●법의학을 다룬 드라마 ‘싸인’이 인기였죠. 드라마 보셨나요.

 “그럼요. 일반인들이 그런 드라마를 통해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요. 그런 드라마가 나오면 고등학생한테서 e-메일이 많이 와요. ‘법의학자가 되고 싶다’는 내용들이죠.”

●드라마 속의 법의학이 현실과는 다르겠죠.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죠. 드라마 흐름상 어쩔 수 없나 봐요. 하지만 잘못된 내용이 알려질까 봐 걱정도 됩니다.”

●‘잘못된 내용’요?

 “부검 결과를 의사가 조작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비춰지는 게 제일 우려됩니다. 외국 영화를 보면, 부검만 하면 사람의 죽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것도 실제 현실과는 달라요. 부검하고 나서도 사망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법의학도 결국 과학이거든요. 판단의 근거가 충분해야 하고, 다른 사람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의학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법의학을 무시하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이 교수는 ‘검시(檢屍)’와 ‘부검(剖檢)’이라는 용어를 섞어 썼다. ‘검시’는 주검을 검사하는 일이다. 외관만 보는 것을 ‘검안(檢案)’, 해부를 해서 내부까지 관찰하는 것을 ‘부검’이라고 한다.

●법의학자를 과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죠.

 “흔히 법의학이라고 하면 한 명의 전문가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작은 분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런데 법의학은 검시 외에도 독극물 검출, 유전자 검사, 치흔 감정, 지문 채취 이런 것들을 다 아우르죠. 저는 그중에서 검시를 전문으로 하는 것이고요.”

●법의학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떤 점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기 낳을 사람이 산부인과에 가지 피부과나 정형외과에 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 형사소송법 체계에서는 부검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자격을 정해놓지 않았어요.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해놓았죠. 법의학자 입장에서 볼 때 부검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력은 전국에 40명밖에 안 돼요.”

●전문 인력이 그렇게 부족한가요.

 “미국과 일본에선 전체 사망건수 중 15% 정도를 ‘의문을 가질 만한 죽음’으로 봐요. 사망 원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꼭 검시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24만7000명 정도가 죽어요. 이 중 15%면 3만7000명 정도가 원인을 의심할 만한 죽음에 해당하죠. 그런데 전문인력이 한 해에 검시할 수 있는 게 6000건 정도예요.”

●그러면 나머지 3만1000건은요.

 “부검을 안 하거나, 아니면 특별히 훈련받지 않은 의사들이 부검을 하죠. 3만1000건 중에서 단 1%라도 잘못 처리됐다고 가정해 보세요. 한 해 300명의 사인이 실제는 타살 혹은 사고사인데, 병사로 처리될 수 있어요. 우리 사회가 검시를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시를 전문으로 하시니 시체를 자주 보시겠습니다.

 "지금은 좀 게을러졌지만, 한창 부검할 때는 사나흘 시체를 못 보면 그 냄새가 그리워질 때도 있었어요.”

●어떤 냄새죠.

 “부패한 시체의 고유한 냄새도 있지만 부패하지 않았더라도 시체의 살냄새가 있어요. 살아있는 사람의 살냄새와는 분명 다릅니다. 부패가 일어나는 초기 단계의 냄새라고 할까요?”

●부검을 많이 할 때는 몇 구나 하셨나요.

 “하루에 10건 넘게 한 적도 많죠.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이면 부검을 하죠.”

●현재까지 부검을 몇 건 하셨나요.

 “글쎄요. 세 보질 않아서….”

●주검에 칼을 댈 때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시체를 보면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시체 보고 섬뜩한 기분이 들면 이 일 못 해요.”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나요.

 “솔직히 말하면 딱 한 번 있었어요. 언제냐 하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예요. 돌아가신 아버지 손을 잡았는데 섬뜩하더라고요. 내 감정이 들어가니까, 시신을 못 만지겠더라고요.”

●많은 분야 중에 왜 법의학을 선택하셨나요.

 “의학 분야 중에서 뭔가 좀 독특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 보고 ‘왜 산부인과 택했느냐’고는 안 묻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내도 제게 집요하게 물어요. ‘그냥 치료의학 하지 왜 쓸데없는 것을 해서 돈도 못 벌고 그러느냐’고요.”(웃음)

●그래도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우리 형이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이었어요. 형이 당시에 고려대 법의학 교수셨던 문국진 선생님 강의를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법의학이라는 게 있는데 폼 나더라’ 해요. 그래서 제가 도서관에 가봤더니 법의학 책이 꽤 있더라고요. 읽어봤더니 재미있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더라고요.”

 문국진(86) 고려대 명예교수는 법의학계의 원로다. 수필집과 법의학 관련 서적을 30권 가까이 썼다. 『음악과 법의학』 『명화와 의학의 만남』 같은 책도 포함돼 있다.

●교수님에게 법의학을 추천한 형님은 지금 어떤 분야를 하십니까.

 “흉부외과를 하고 계세요.”(웃음)

●의대생들 사이에서 법의학의 인기는 어떤가요.

 “학생들이 강의는 재미있어 해요. 법의학은 누군가 죽은 얘기인데, 추리소설·영화 같은 요소들이 들어 있잖아요. 하지만 전공으로서 선택은 잘 안 해요. 다들 머리가 좋아서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다 생각해 보잖아요. 제가 법의학을 선택했으니까 하는 소리지만, 사실 법의학자들은 멍청한 사람들이에요. 주변에서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분야다. 멋있다. 잘한다’ 하니까 여태껏 하는 것이죠.”

●검찰이나 유족, 또는 부검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자유로우신가요. 압력을 느끼시진 않나요?

 “우리한테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느끼죠. 하지만 누구 말 듣고 엉터리로 감정 결과를 써줬다가는, 그 사람은 평생 법의학 못 해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어땠습니까.

 “제가 지금도 부검하는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인데요. ‘압력이 들어올 소지가 있는 사건이라면, 부검 즉시 소견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라’고 합니다. 누가 나한테 압력을 넣으려고 하면 ‘이 사람도 알고, 저 사람도 알고, 이미 다 안다. 그러니 부검 결과를 못 바꾼다’ 식으로 버티라는 것이죠. 군사정권 시절 때는 그것이 법의학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편이기도 했어요.”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는데요. 법의학자들이 관여할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보면 피해자 대부분의 사망원인이 익사로 나오더군요. 그런 뉴스를 보고 ‘야, 이 와중에도 법의학자들이 부검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는 사망자의 신원을 밝혀내느라 일본 법의학자들이 더 바빠지겠죠.”






j 칵테일 >> ‘금정굴 양민학살 사건’희생자 유골 간직한 사연

서울대 의대 부검실에는 두개골 100여 개가 보관돼 있다. 이윤성 교수가 몇 달만 보관해줄 생각으로 맡은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 측 허락 없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16년이 흘렀다.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 사건’ 희생자 유골이다. 6·25전쟁 중이던 9·28 서울 수복 직후 우익단체 청년들이 ‘인민군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학살, 암매장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유골을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 유족들이 유골을 발굴하고 있었는데, 이분들이 의사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알음알음으로 제게 연락이 왔어요. 현장에 가보니 마땅히 유골 보관소도 없고, 유골이 훼손될 게 뻔해서….”

●단지 보관만 하셨나요.

 “사망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추려봤어요. 150명이 넘어요. 또 유족 한 명이 두개골 하나를 콕 짚어서 유전자 검사를 해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검사를 한번 해봤어요. ‘아무리 봐도 우리 가족 같다’는 거예요. 가족관계는 아니었어요.”

●그 유족의 주장대로였다면 감동적이었겠네요.

 “그분 말이 들어맞았으면 큰일날 뻔했죠. 다른 유족들도 모두 달려들어 검사해달라고 졸랐을 테니. (웃음) 두개골 모습 가지고 ‘가족이다, 아니다’를 알 순 없거든요.”

●앞으로 유골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사실은 부검실 있는 건물이 낡아서 올해 철거 예정이에요. 그래서 고양시를 협박했죠. 건물도 철거되니 길거리에 유골을 내다 놓겠다고. 그랬더니 고양시가 올여름 유골을 모셔가겠다고 약속했어요. 참 다행이죠.”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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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