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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인조 인간’이 당신에게 미소짓는다면?

그나마 그때는 ‘나비’였다. 꿈속에서 나비가 됐다가 잠에서 깬 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이냐, 나비가 사람 꿈을 꾸는 것이냐”고 외쳤던 장자(莊子) 말이다. 본인이야 헷갈렸는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까지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단 얘기다. 덴마크 올보그 대학의 헨릭 샤르페(43) 교수는 경우가 다르다. 자신과 똑 닮은 로봇 ‘제미노이드-DK’를 통해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그는 남들까지 헷갈리게 한다. 이 로봇이 생김새는 물론 얼굴 표정까지 사람을 쏙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사람, 로봇공학자가 아닌 커뮤니케이션 학자다. 그래서 일본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 자체엔 큰 관심이 없다. 이 로봇을 이용해 ‘인간·존재·관계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의 답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게 그의 목표다. 이쯤 되면, 21세기판 ‘나비 꿈’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하자. 이 인터뷰에 답하는 건 사람인가, 로봇인가.

 “둘 중 ‘영혼’이 있는 쪽이다. 요즘 매일 이런 질문을 받는다.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 연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제미노이드-DK’가 무슨 뜻인가.

 “쌍둥이(Gemini)와 인간형 로봇(android)의 합성어다. ‘DK’는 덴마크의 약자다. 이번 로봇은 3세대 제미노이드다. 일본에서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기존 모델은 일본인의 얼굴을 본떴다. 이번에 처음으로 서구인의 얼굴로 제작됐다. 인문학적 연구에 쓰인다는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서양 사람처럼 만들려면 로봇의 피부만 바꿔 입히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서구인은 일반적으로 대화할 때 (동양인보다) 얼굴의 윗부분 절반을 더 많이 움직인다. 제작 과정에서 로봇의 눈썹 움직임에 특히 신경썼던 이유다. 그러려면 피부뿐 아니라 로봇의 내부 설계도 바꿔야 한다. 또 서양 남자 중엔 나처럼 수염을 기른 사람이 많다. 내 수염의 모양은 물론 털의 색깔, 얼마나 빽빽하게 났는지까지 꼼꼼하게 측정해 제작했다.”

●만들기 쉽지 않았겠다.

 “얼굴 모형을 뜨는 게 가장 불편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한참을 버텨야 했다. 팔의 모형을 만들 때는 혹시 털이 뽑혀나갈까 봐 미리 면도도 했다. 준비·제작을 합쳐 1년쯤 걸렸다. 현재 일본에서 막바지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곧 덴마크로 옮길 예정이다.”

●자신과 닮은 로봇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솔직히 이상했다. 처음 봤을 땐 구동 소프트웨어가 설치되기 전이었다. 마치 박물관의 밀랍인형 같았다. 로봇의 표정을 바꾸려면 수동으로 작동해야 했는데, 정말 어색했다. 사람들이 내 얼굴 표정을 강제로 바꾸려고 덤벼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로봇이 스스로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이 갑자기 깨어나는 것 같았다. ‘각성’이란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로봇은 어떻게 작동하나.

 “두 가지 방식이 합쳐져 작동한다. 일단 내 행동을 본떠 미리 설정해 둔 움직임이 있다. 숨 쉬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런 행동은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자동으로 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동작은 로봇 조종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원거리에 있는 조종자가 얼굴 표정을 짓거나 머리를 흔들면 카메라가 그 움직임을 읽어 로봇에 전달한다. 그러면 로봇이 조종자의 표정·동작을 똑같이 따라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프로그램해 둔 말을 할 수도 있고, 떨어져 있는 조종자의 말을 (마치 방송처럼) 전달할 수도 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재미있어 한다. 아내는 로봇이 귀엽게 생겼다고 하더라. 그래도 여전히 ‘헨릭 1호(사람)’를 ‘2호(로봇)’보다 더 좋아하는 눈치다. 정말 다행 아닌가? 아이가 셋 있는데 모두 친구들에게 ‘아빠 2호’를 보여 주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

●‘로봇 교수’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세계 각국의 신문·방송에서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된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하루에 받는 전화·e-메일도 전과 비교가 안 되게 늘었다. 거의 모든 연령대의 학생들로부터 각양각색의 질문도 쏟아진다. 가능하면 많이 답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런 점만 빼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이다. 하루 일을 마치면 (로봇이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직접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남자다.”

 슬슬 탐색전을 마치고 본론으로 넘어갈 때가 됐다. 샤르페 교수는 이 로봇을 가지고 무슨 연구를 하려는 걸까. 그런데 불안해졌다. 이 사람, 전공 분야가 ‘컴퓨터 중개 인식론’이다. ‘컴퓨터 중개’는커녕 ‘인식론’이 뭔지도 가물거렸다. 대체 이런 분야가 로봇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쉽게 설명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제미노이드-DK는 샤르페 교수의 얼굴 모양을 그대로 옮겨 만들었다. 가장 왼쪽 사진이 얼굴 본을 뜨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고 왼쪽 둘째 사진은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얼굴 본이다. 셋째 사진에서는 완성된 로봇(오른쪽)을 샤르페 교수가 들여다보고 있다. 넷째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로봇의 외형은 추가작업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에서 ‘Geminoid DK’를 검색하면 로봇의 작동 실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식론이 뭔가. 과학기술과 무슨 관련이 있나.

 “생각과 지식을 다루는 학문이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어떻게 학습을 하는 걸까, 지식은 어떻게 발달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엔 이들 영역에서 기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퓨터가 우리의 지식 습득 방식을 어떻게 바꿔놨는지 생각해보라.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우리의 운전방법과 방향감각에 미친 영향은 또 얼마나 큰가. 이제 인간은 기술 없이는 삶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사고의 발전’조차도 기술에 의지한다.”

●사고의 발전을 기술에 의지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해 지구 전체의 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가 완성된 뒤 어떻게 됐나. 우리가 이 행성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 DNA 지도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컴퓨터는 또 어떤가. 인터넷과 검색엔진이 우리가 지식을 찾는 방식을 뒤바꿔 놓았다. 우리가 학습할 수 있는 영역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게 컴퓨터 중개 인식론이다.”

●로봇은 당신의 연구에 무슨 도움을 주나.

 “나는 지금껏 기술과 관련된 현상을 인문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해왔다. 예를 들면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같은 것들이다. 최근 학계에서 이런 연구가 늘고 있다. 로봇 관련 연구도 초점이 이런 쪽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 한국이나 덴마크처럼 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연구 과제라고 본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의 탐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이란 뭘까, 관계란 뭘까, 존재란 또 뭘까… 이런 것들 말이다.”

●인간·관계·존재란 건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것들 아닌가.

 “어떤 사람은 인간이 두 가지 정보의 집합체라고 말한다. 유전자 코드와 (삶의) 경험 말이다. 그럼 제미노이드-DK는 어떤가. 동영상으로 이 로봇을 본 사람은 인간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적어도 겉으론 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중년 남성인 내 모습을 본떴기 때문에 경험도 있어 보인다. 실제로 내 손가락의 흉터까지 그대로 살렸다. 그렇다고 이 로봇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관계란 또 뭘까. 모든 인간은 관계의 산물이다. 그럼 인간과 로봇 사이에도 ‘의미 있는’ 관계가 가능할까. 김 기자가 매일 아침 이 로봇을 만난다고 가정해보라. 아침마다 로봇이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고 치자.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로봇이 사라진다면? 사람이 로봇을 ‘그리워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벌써 이런 문제가 현실이 된 곳도 있다. 치매 노인과 상호작용을 하도록 만들어진 동물 형태의 로봇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얘기를 아나? 듣다 보니 인간이 뭐고, 로봇은 뭔지 헷갈린다.

 “물론 장자 얘기는 알고 있다. 동양 철학 얘기가 나왔으니, 서양 철학 얘기도 해보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했다. 그에겐 이것이 의심할 수 없는 명제였다. 그럼 존재란 뭘까. 나는 존재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하고 싶다. 이른바 ‘혼합 존재(Blended Presence)’라는 것이다. 원격 조종되는 인간형 로봇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을 닮은 제미노이드-DK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런 로봇을 만난 사람은 두 가지 정보를 얻게 된다. 첫째, 이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다. 둘째, 누군가 이 로봇을 통해 내게 얘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의 반응이 둘 중 하나의 정보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양쪽의 혼합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며칠 전 이스라엘의 한 TV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넷 전화로 인터뷰했기 때문에 나는 덴마크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간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같은 날 이스라엘 TV에 등장했다. 내 존재가 ‘전송’된 셈이다.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물리적 장벽’ 너머로 뻗어나가는 그 무엇인가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미노이드-DK를 통해선 훨씬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일단 강의실을 하나 떠올려보라. 다음엔 그 강의실의 개념을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닌 (교육이 이뤄지는) 정신적 공간으로 확장해보자. 됐나? 자, 이제 나는 집에 있고, 그 강의실에 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이 서 있다고 치자. 일단은 작동하지 않는 상태다.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은 우두커니 서 있는 로봇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수업 시간이 되자마자 내가 로봇을 통해 말은 물론 얼굴 표정까지 전달하면서 강의를 시작한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조종을 멈추면 로봇은 다시 동작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가는 광경을 집에서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다면? 로봇은 분명히 계속 강의실에 있었다. 그럼 나는 그 강의실에 있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헷갈리지 않나? 사실 이게 인간형 로봇과 관련된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로봇의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나.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에 나왔을 땐 ‘도구’였다. 복잡한 기능을 가진 계산기였다는 얘기다. 지금은 어떤가. 미디어다.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거나 떨어져 있는 친구·가족과 연락하고 싶을 때 컴퓨터를 켠다. 매스미디어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도 하고 있다. 로봇도 컴퓨터가 걸어온 길을 걸을 것이다. ‘도구’에서 ‘미디어’로 변화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내가 이미 제미노이드-DK를 통해 떨어져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됐지 않나. 하지만 완벽하게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이라면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인간이란 뭘까. 이 인터뷰의 첫 질문에 대한 내 대답으로 돌아가보자. (모방할 수 없는) ‘영혼’을 가진 존재다.”





j칵테일 >> “다들 따라 웃더라”

샤르페 교수가 로봇을 이용해 하려는 연구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감정의 행동유도성’이다.

●행동유도성이 뭔가.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의자 앞에서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잘 알지 않나. 의자라는 형태에 ‘행동유도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나를 보고 따라 웃을 가능성이 커진다. 찡그린 표정을 짓기는 어려워질 것이고…. 로봇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가 통하는지 알아보는 거다. 실제로 제미노이드-DK가 웃는 표정을 짓도록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다들 따라 웃더라.”

 그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 때 신경써야 할 점이 있다고 했다. 특히 어린이와 상호작용을 하는 로봇을 개발할 때 더 그렇다고 했다. 신기술 도입의 결과를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점을 신경 써야하나.

 “어린이들이 로봇과 너무 많은 접촉을 하게 하는게 좋은 것인지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만약 아이들이 인간과의 관계보다 로봇과의 접촉을 더 선호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컴퓨터게임이 비슷한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샤르페 교수는 현재 일본에 있다. 제미노이드 개발을 주도한 일본 연구진과 공동 실험을 하기 위해 갔다. 출발 직전 그에게 방사능 문제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지진으로 일본과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공감하고 애도를 표한다”며 “내가 가는 곳은 교토인데, 문제 지역과는 제법 떨어진 곳”이라고 답했다. 물어본 사람이 부끄러워졌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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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