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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김아타 “잔은 중요하지 않다, 물이 중요하다”





그는 이제 ‘사진작가’가 아니라 ‘종합 아티스트’다. 김아타(55) 얘기다.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시공(時空)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예술 간 경계를 해체해 왔던 그의 최근 행보가 주목할 만하다. 김씨는 최근 몇 년간 카메라 대신 ‘대형 캔버스’(180X140㎝)를 들었다. 한국 비무장지대에서 중국 허난(河南)성, 인도 갠지스강을 거쳐 샌타페이까지. 세계 곳곳에 캔버스를 설치하는 ‘드로잉 오브 네이처(Drawing of Nature)’를 진행 중이다. 김씨는 문화도시 뉴욕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2006년 아시아 작가 최초로 맨해튼의 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 그가 25일 다시 뉴욕 문을 두드렸다. 루빈 뮤지엄에 ‘아이스 부다(Ice Buddha)’ 작품을 설치한 그를 j가 만났다.


대재앙의 상처, 예술로 치유한다

●‘얼음 불상’을 설치한 작품 의도는.


 “185㎝의 얼음으로 부다를 만들어 로비에 설치했다. 그게 녹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 관객은 얼음 부다를 만질 수 있고, 녹은 물을 작은 용기에 담아 가져갈 수도 있다. 그것으로 화초에 물을 주거나 정원에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사이클’ 아닌가.”

●당신은 불교 신자인가.

 “나는 부디스트가 아니다. 욕심이 많아 모든 종교가 가진 ‘이즘(~ism)’을 다 가지고 싶었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존중한다. 나는 모든 사물이 경이로우며 바이블이라 생각한다.”




갠지스 스케치
‘드로잉 오브 네이처’ 프로젝트의 하나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도 갠지스 강가에 캔버스를 세웠다. 우기(雨期)에는 캔버스가 반쯤 물에 잠긴다.


●‘자연의 사이클’을 말했는데, 그러고 보니 최근 곳곳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 중이다. 이것도 ‘자연이 스스로 그리는 그림’ 아닌가.

 “그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시작했다. 현재 30개 공간에 캔버스를 세웠다. 앞으로 약 30곳에 더 만들 예정이다. 미국엔 4곳이 있다. 지난해 루빈 뮤지엄 옥상과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퀸스 롱아일랜드시티의 건물 옥상에 캔버스를 뒀다. 또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영혼이 배어 있는 샌타페이와 뉴멕시코의 인디언 보호구역 등도 포함됐다. 아마도 오키프의 영혼과 인디언들의 자유혼이 캔버스에 스며들고 있지 않을까.”

●방대한 프로젝트인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캔버스를 설치하는 게 힘들다. 나라마다 문화와 법이 다르니까. 하지만 어차피 작업은 그런 것이다. 나는 작업을 순례라 생각한다. 사과나무 심듯 오늘 하나의 캔버스를 세운다. 거기에 내 모든 것이 가 있다. 모든 과정이 창작활동이다. 허가를 받고 캔버스를 설치한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최소 2년간 캔버스가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혹시 캔버스가 훼손돼 손바닥만 한 흔적이라도 남는다면 그것도 자연으로 수용할 것이다. 모든 캔버스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쓰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던 곳에도 캔버스 설치를 계획 중이라는데.

 “세계의 어떤 공간도 소중한 역사성과 정체성이 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는 인류사에 외면할 수 없는 트라우마고, 카르마(karma·업보)다. 캔버스 프로젝트는 예술의 은유적 힘으로 인류 상처를 치유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히로시마는 현지 시청과 신문사 협조로 지난해 설치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2년째 협상 중인데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캔버스를 세울 것이다. 나는 ‘예술이 인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은 대지진으로 또 한번 큰 상처를 입었다. 예술가로서 어떤 생각을 하나.

 “무력감을 느낀다. 며칠간 일본이라는 나라와 환경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분명한 것은 극단의 혼란은 분명 새로운 질서를 생산한다는 사실이다. 외적인 자연 상황이거나 인간 내적 에너지의 활동이거나 분명 그렇다. 큰 상처가 큰 지혜를 낳는다. 예술은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이다.”




인제 원시림 10m
지난해 6월 ‘드로잉 오브 네이처’ 작업으로 한국 강원도 인제의 원시림에 설치한 10m 길이의 캔버스다. 9개월째 자연에 노출돼 있다. 그 사이 세 번의 태풍과 한 번의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캔버스는 숲 속에서 일어나는 기운, 생동의 물리적 변화를 받아쓰고 있다. 이 시간에도 캔버스는 한 편의 대서사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진이 일어난 센다이(仙臺)에도 캔버스 프로젝트 계획이 있나.

 “하얀 캔버스는 자연과 인간의 역사에 대한 항복이며, 상처를 치료하는 붕대와 같은 의미도 갖고 있다. 과거는 죽은 역사가 아니다. 죽은 역사란 없다. 히로시마가 설명해준다. 방사능은 반감돼 사라졌지만 방사능이란 관념은 살아 있다. 이 시각 일본의 원전 문제가 처절하게 말한다. 대재앙의 순간에 ‘드로잉 오브 네이처’를 생각하면 초라하고 슬퍼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초라함이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다.”

 
작업은 레고 블록을 쌓는 일

●사진에서 설치·퍼포먼스로 창작이 진화하고 있다. 카메라를 버렸나.


 “사진은 버린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물이 가진 자양분이 중요하지, 머그잔에 마시거나 유리잔에 마시거나 잔이 중요하진 않다. 매체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 나의 철학을 수용하는 어떤 매체도 사용한다. 사진이나 회화, 영화·음악·문학 등 모든 예술은 세상을 반영한다. ‘드로잉 오브 네이처’의 캔버스도 세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과 회화는 다르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사진예술이 설 자리가 있나.

 “디지털의 진화는 오히려 사진의 한계를 확장했다. 사진이 한계에 부닥친 게 아니다. 필름이라는 물질이 진화의 속성에 의해 죽었을 뿐이다. 그 자리를 디지털이 대신했다. 디지털의 진화만큼 사진 표현도 그 한계를 혁명적으로 확장했다. 예를 들어 내 작품 중 ‘온 에어(ON-AIR) 프로젝트’의 ‘인달라 시리즈’를 보자. 도시(都市)를 1만 컷 촬영해 중첩시켜 최종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미 1998년 개념을 정리했지만 필름으로는 불가능했다. 디지털 발전으로 작업이 가능했다. 이미지의 저장 수단이 물질인 필름에서 픽셀인 디지털로 바뀐 것뿐이다.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이미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온 에어(ON-AIR)’ 프로젝트의 ‘8시간’ 시리즈

뉴욕 57번가의 한 장면이다. 한 장소에서 한 컷의 필름에 ‘8시간’ 노출을 통해 움직이는 것을 속도에 비례해 사라지게 했다. 빨리 움직이는 것은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천천히 사라진다. 정지된 건물 또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다만 상대적일 뿐이다. 이 작품을 보고 많은 뉴요커가 울었다.


●이미지가, 그리고 미술이 종교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 영향력 없는 예술이 살아남겠나. 중요한 건 ‘아이덴티티’와 ‘이데올로기’의 차이다. 이데올로기의 완성은 집단성으로 나타난다. 반면 아이덴티티는 철저히 개인적이다. 물론 집단의 아이덴티티도 존재하지만 아이덴티티가 집단성을 가지면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래서 예술은 아이덴티티 영역에 가까우며, 종교는 당연히 이데올로기를 갖게 된다. 또한 예술은 세상과 은유적으로 관계하는 대신 종교는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그러나 위치하는 공간이 다를 뿐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다르지 않다. 그것이 예술과 종교의 존재 이유다. 나는 내 작업이 인간을 사유하게 하고, 명징하게 하며, 지혜롭게 하기를 바란다. 욕망은 스스로 출구를 찾듯 희망 없는 메시지는 공염불과 같다.”

●생애 잊히지 않는 이미지나 예술작품이 있나.

 “일거에 세상을 바꿀 작품이나 정치나 종교는 없다. 작업은 레고 블록을 쌓는 것과 같다. 어느 하나도 들어낼 수 없다. 하나를 들어내면 블록은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며,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며 새로움이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새로움도 내일이면 버려야 할 관념이 된다. ‘뮤지엄 프로젝트’를 하면서 ‘오늘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순간도 흘러간 물이다. 그러한 특성을 가진 인간이 역사를 생산해 가는 것이라 믿는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후회하고, 진화하고, 반성하고, 회개하며 말이다.”

 
나를 만든 건 ‘어머니 손맛’ 같은 서울

●그동안 여러 도시를 돌며 작업했다. 뉴욕은 어떤 곳인가.


 “20년 전 ‘뉴욕엔 20만 명의 아티스트가 살며, 그중 2만 명이 밥을 먹고, 나머진 처절하게 살지만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영감이 세상을 먹여 살린다’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어깨를 스치는 사람의 반은 아티스트라 할 정도로 뉴욕은 그들에게 유토피아이자 UFC(종합격투기대회)의 철망 링과 같은 곳이다. 나에게 뉴욕은 피해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것이 용광로처럼 나를 끊임없이 작동하게 하고, 비등하게 했다.”

●당신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인가.

 “인달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워싱턴과 뉴욕, 모스크바, 도쿄, 프라하, 베를린, 파리, 델리, 아테네, 서울 등의 도시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그 작업을 하면서 인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나는 21세기 도시를 자연이 진화한 것으로 인식한다. 스스로 변화한 게 자연이듯, 도시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스스로 진화한 표본이다. 예를 들어 산에서는 다람쥐와 새들이 교미를 하고 유전자(DNA)를 생산할 때, 인간도 같은 들판의 움막에서 출발했지만 편의성을 위해 침대를 만들었고 진화를 거듭했다. 그래서 20세기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도시를 제외하고는 인간성을 논할 수 없다.”

●뉴욕 ‘루빈 뮤지엄’의 옥상 캔버스에 담긴 도시 이미지는 뭔가.

 “도시에 설치하는 캔버스들은 그 도시의 오염 정도를 자연스럽게 채집한다. 물론 오염도를 채집하는 게 목적은 아니지만, 이것도 도시의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은 드라마틱한 도시지만 청정한 도시다. 따라서 큰 변화는 없지만, 캔버스는 더하고 빼지도 않고 그만큼 뉴욕의 자연을 걸러낸다. 히로시마에 설치한 캔버스는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히로시마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서울에 대한 감정은.

 “평생을 살아도 어머니의 손맛을 잊을 수 없다. 서울은 그런 곳이다. 한과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게 어머니의 삶이듯 서울은 그런 모습도 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만 그리워하며 세상을 살 수 없다. 나도 서울만 생각하고, 한국만 생각했으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걸 깨닫게 했던 곳도 서울이고 한국이다. 그래도 내가 한국에서, 동양에서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동양이라는 환경이 나를 만들었다.”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로서 10년 뒤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 10년 후를 어떻게 알겠나. 그냥 오늘을 살듯 자연의 부분으로 편안하게 살고 있으면 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나는 높이, 잦으면 조용히 날 것이다.”

뉴욕 중앙일보=박숙희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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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