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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일본이여, 어서 일어나라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극일·친일·반일···. 나라 이름으로 디테일한 감정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한 예는 없다. 호감이 생길 만하면 민족적 자존심의 뇌관을 건드려 애초의 ‘반일’로 되돌리곤 하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한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내 인생도 일본을 떼놓고는 얘기가 안 되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첫 인연은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기 시작한 해사 교관 시절부터다. 상대가 왜군이었으니 간접 인연인 셈이다. 글로벌 반도체 회사의 제의를 뿌리치고 1989년 한국에 정착하게 된 계기도 일본을 어떻게든 이겨보겠다는 일념에서였다. 합방 이후 어느 분야에서건 일본을 극복했던 적이 없었던 시기다.



 아이러니지만, 일본의 반도체를 극복하게 된 결정적 계기인 94년 256메가 D램 세계 최초 개발도 따지고 보면 일본을 집중 벤치마킹한 덕을 조금은 보았다. 그 후에도 일본을 수없이 방문하면서 그들과 교감했으며, 이는 공직에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최근의 일본 사태에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사사로운 감정은 최대한 감춘 채 이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또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기 위해 분주해질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하는 건 좀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연구개발(R&D)을 책임지고 있다.



 국가 R&D라는 게 시장성도 중요하나 안전성·신뢰성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교훈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새긴다. 아무리 기술과 시장성이 뛰어나도 안전을 완벽하게 담보하지 못하면 결과는 ‘득’이 아니라 ‘독’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시장 창출형’ 미래산업 선도기술을 발표했다. 마침내 우리가 막연히 동경해 오던 선진국 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우선 산업 인프라 전반에 걸쳐 선진국다운 ‘국격’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가장 중요한 테마로 삼을지 고민한 끝에 ‘동반과 균형’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으로 제안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과 부품소재 등 각 분야의 ‘동반·균형 성장’을 제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대기업만 발달한 나라치고 선진국은 없다. 소프트웨어 없이 하드웨어만 가지고 먹고살 수 있는 세상도 이제는 갔다. 부품소재 경쟁 기반 없이 완성품 경쟁력만 가지고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번에 발표한 여섯 개 프로젝트 중 ‘다목적 소형 원전’이 있다. 전력 공급 없이 자연 대류현상을 이용해 냉각이 가능한 ‘무사고’ 원전이라는 점, 투자비·건설 기간·용도 측면에서 시장성과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점 등이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수출용 소형 원전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안전성·신뢰성에 대한 사전 검토를 철저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발표할지 여부에 대해 전날 밤까지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일본이 지금 저 지경인데, 한국과 일본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발표에서 빼자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안전성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더라도 지금의 정서는 원전에 관한 한 거의 패닉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며칠을 고민 끝에 정공법을 택했다. 6개월을 고심해 만들어 놓은 과제 중 하나가 발표에서 제외되는 게 아까워서도 아니었고, 소신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단어를 들먹이기도 싫었다. 다만, 이 과제가 우리의 선진국 진입을 앞당길 수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럴 리도 없고 또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일본과 같은 사태에 처했을 때 나에게 똑같은 상황이 왔다면 그때는 어떻게 했을까 자문해 본다.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결론은 같았을 것이다. 물론 안전성이 100% 담보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일본은 내가 조금 느슨해질 만하면 여지없이 나의 도전정신을 자극한 선의의 경쟁자이자 오랜 지기다.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프다. 일본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위로 메일을 보내는 걸로는 아픔이 잘 가시지 않는다. 일본이여 어서 일어나라.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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