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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 바보 같은 놈들”







김진국
논설실장




나는 얼마 뒤 지금 사는 곳에서 가까운 데로 이사를 한다. 친구들은 “언제 이사하느냐” “얼마를 줬느냐” 꼬치꼬치 묻는다. “중요한 결정은 내가 하지만 사소한 일은 아내가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부인은 집과 자동차를 사는 따위의 ‘사소한 일’을 하고, 남편은 세계 평화와 같은 ‘중요한 일’만 한다는 해묵은 농담을 인용한 것이다. 사실 가장인 내가 이사를 ‘사소한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집안일이야 시류(時流)에 따라 역할 분담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정 운영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뤄져서는 안 된다. 국가 지도자의 역할은 헌법에 명시된, 변할 수 없는 것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사태를 계기로 도마에 오른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의 리더십은 이런 점에서 혼란을 일으켰다.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 총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가리지 못한 것이다.



 3월 11일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간 총리는 원전이 피해를 당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는 곧바로 바닷물로 진압하라고 지시했다. 도쿄공업대학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한 공학도로서 원전에 대해서는 정부 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전력이 강력히 반발하자 물러서 버렸다. 사태를 낙관한 그는 국민들에게 “냉정을 찾아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위험을 감지한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것도 거절했다.



 다음 날에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현장 방문을 강행했다. 사고 수습 활동에 방해만 된다는 참모들의 만류를 듣지 않았다. 사태를 낙관한 그는 돌아와 여야 당수회담에서도 “원전은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온 지 한 시간 만에 1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원전 사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15일 그는 도쿄전력을 방문해 “각오하라”고 호통을 쳤다. 관저로 돌아와서도 “도쿄전력, 이 바보 같은 놈들(東電のばか野郎が)”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번 따져보자. 지도자가 기술적인 문제를 자신의 지식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일본 내에는 쟁쟁한 물리학자들이 수없이 많다. 얄팍한 지식으로 도쿄전력과 입씨름을 하니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는 도쿄전력의 판단 실수를 비난했지만 처음부터 폭넓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종합적인 판단을 했어야 한다. 최종 결단의 책임은 총리의 몫이다. “바보 같은 놈들”이란 질책도 그 자신이 들어야 할 말이다.



 더구나 이번 재난은 상상 밖의 대규모다. 기존의 체계나 매뉴얼로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도쿄에서 해야 할 일이 더 화급했다. 국정의 중심을 잡고 조직적인 대책을 서둘렀어야 했다. 그런데 재난 현장으로 쫓아가 TV 화면에 보이는 이미지 정치를 선택했다. 추락하고 있던 정치적 인기를 만회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는 의심을 사도 싸다.



 리더십의 위기는 이웃 나라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거대 국책사업들이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정운찬 당시 총리에게 그 짐을 지웠다. 갈등을 빚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나 야당을 설득하는 일을 정 전 총리가 대신할 순 없다. 결국 마지막엔 정치권에 결정을 떠넘겨 버렸지만 이 결과에 대해 이 대통령이 책임을 벗어버릴 순 없다.



 과학벨트, 동남권 신공항 문제도 총리실로 넘겨놓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국무총리가 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하고 그 이후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황식 총리가 정운찬 전 총리와 비슷한 역할을 떠안게 된 셈이다. 이 문제도 이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건 것이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선거 유세를 충청도에 가서 이야기했으니 표 얻으려고 내가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고 실토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농담처럼 흘려서 말할 일인지 의문이다. 사과하고 결단을 내려 책임을 지는 게 깨끗하다. 제대로 기자회견 한번 안 한 대통령이 시장을 찾아 설렁탕을 먹고, 상인에게 목도리를 둘러준들 간 총리의 현장 방문보다 나을 게 없다.



 일본에서 보듯 팔로어십이 좋아도 리더십이 부실하면 모래알이다. 앞으로가 더 큰 일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는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이렇게 포퓰리즘에 현혹돼 우왕좌왕하다가는 간 총리가 내뱉은 호통을 우리가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바보 같은 놈들!”이라고.



김진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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