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food&] 박찬일의 음식잡설 ② 한국인의 편식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숀 펜과 수전 서랜든 주연의 명화 ‘데드맨 워킹’을 기억하시는지.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란 사형수가 집행장으로 걸어가는 최후의 순간을 뜻한다. 그만큼 절체절명과 절대공포의 순간일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인기를 끌었고, 나도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다. 슬프게도 나는 구제역 파동의 한가운데서 그 영화를 떠올렸다. ‘살처분(이처럼 비윤리적인 용어는 누가 만들었을까)’되기 위해 구덩이로 향하던 돼지들의 걸음은 딱 ‘데드맨 워킹’이었다.



 온 나라를 휩쓸었던 구제역 파동은 몇 가지 교훈을 던져주었다. 동물 윤리와 생명에 대한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고민은 물론이고 고기를 적게 먹거나 멀리하자는 주장도 눈길을 끌었다. 나는 그 와중에 구덩이에 파묻히던 돼지의 배를 보았다. 그 두툼하고도 불룩한 삼겹살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삼겹살은 우리 국민 선호도 1위의 부위다. 삼겹살 때문에 더 많은 돼지가 저 죽음의 구덩이 속으로 ‘데드맨 워킹’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돌이켜봐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할 때 나는 시장을 자주 봤다. 현지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부였다. 한국과 사뭇 다른 시장 사정이 신기하기만 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금값인 소 내장, 우설, 꼬리, 갈비가 상상 이상으로 쌌다. 덕분에 포식을 하긴 했지만 이해가 다 되는 건 아니었다. 돼지고기를 보면 특히 놀라운 일이 가득했다. 부위별 값이 한국과 정반대였던 것이다. 한국은 삼겹살과 목살이 비싸고, 등심과 안심, 뒷다리는 무척 싸다.



 반면 이탈리아는 뒷다리, 등심과 안심이 고가였다. 삼겹살은 거의 삼분의 일 수준이었다. “왜 삼겹살이 이렇게 싼가” 하고 물어보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삼겹살은 ‘기름’이니 당연히 싼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내 시중에 파는 삼겹살 베이컨은 99%가 수입육이다. 국산은 원가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삼겹살이 다른 부위에 비해 비싸다. 돼지고기를 최고로 사랑하는 중국에서조차 삼겹살은 싸다. 저 유명한 동파육도 서민 음식으로 개발된 것이다.



 삼겹살을 즐기는 건 좋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돼지는 공산품이 아니므로 더 많은 삼겹살을 생산하려면 결국 사육 자체를 늘려야 한다. 사료는 대개 수입이며, 축산 폐기물도 많아진다(돼지 분뇨는 처리 비용도 높다). 사육 농가에서는 돼지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국가 차원에서 보면 폭증하는 수요를 대느라 삼겹살을 수입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 더구나 많은 돼지를 싸게 기르려다가 구제역 같은 전염병의 기습을 받게 된다. 이번 사태에 국가가 지출한 비용은 자그마치 3조원이 넘었다. 그 돈은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다.



 삼겹살만 사랑하는 소비자 때문에 양돈가의 시름은 커진다. 오죽하면 유명 연예인을 고용해 등심과 안심, 다릿살 같은 비인기 부위가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외치겠는가. 사실 이런 부위는 영양가도 매우 높고 요리하기에 따라 색다르고 깊은 맛을 낸다. 그냥 불에 굽기만 하는 삼겹살과는 차원이 다른 요리가 가능한 것이다.



 손님 중에는 “삼겹살 외에 먹을 만한 돼지고기 요리가 적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은 다르다. 나는 한동안 돼지 등심을 오래 숙성시켜 저온에서 요리해 판매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다양한 부위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보려는 나 같은 요리사나 식당의 노력이 부족한 점도 있었던 셈이다. 최근 지리산에서 흑돼지 뒷다리로 만든 생햄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이탈리아산을 능가하는 기막힌 맛이었다. 어떤 대안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따지고 보면 삼겹살이 우리 돼지고기의 주역으로 나선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옛날에는 갈비가 최고였으며, 삼겹살이 외식의 주인공이 된 것은 30년이 채 안 된다. 그런데 돼지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삼겹살의 양은 얼마나 될까. 답은 12% 미만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마냥 좋아만 할 부위치고는 너무 적은 양이 아닐까.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