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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세 살 짜리 아이로 느끼는 일본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
대학원 교수




오늘도 아이는 킨더가르텐(유아원)에서 혼자 놀았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유학 시절 “누구하고 놀았느냐”는 질문은 매일 저녁 세 살배기 아들을 킨더가르텐에서 데려오면서 던져진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 아이는 늘 침울한 표정으로 “I played by myself(혼자 놀았어요)”라고 답했다. 미국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 것인지, 스스로 주눅이 들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듣는 부모의 마음은 쓰라리다.



 한 달쯤 지났다. 여느 때처럼 누구와 놀았느냐고 묻자, 아이는 활짝 핀 얼굴로 “I played with my friend, I have a friend(친구와 놀았어요, 친구 있어요)”라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내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음은 물론이다. 며칠 뒤 킨더가르텐에 들러 아이 친구가 도대체 누군지 엿보자는 아내의 전화가 왔다. 공부하던 것을 접고 예고 없이 들렀다. 멀리 보이는 아이는 누구와 모래 장난에 열심이다. 곧이어 눈에 잡힌 아이 친구를 본 순간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잊었다. 아이의 친구는 며칠 전 새로 온 일본 유학생의 아이였다. 그 많은 서양 아이들 가운데 단 한 명 있는 일본 아이였다. 세 살, 이제 막 두 살을 벗어난 그 어린 나이에도 자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을까? 아내와 나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묘한 감동을 느꼈고, 그날 이후 나는 일본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동질감과 함께 보다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몇 년 전이다. 나는 모 TV 방송 대담에서 당시 인기 드라마인 “불멸의 이순신”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일본인들의 절대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극악무도한 사이코쯤으로 그린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즉각 터졌다.



연구실로,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로 나를 비난하는 전화·메일·댓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친일파라는 점잖은 표현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방송사 홈페이지를 도배질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나는 망연자실했고, 방송사는 해명성 팝업까지 띄우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 일을 겪은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일주일간 일본을 돌아다녔다. 미국에서 살던 때와는 달리 귀국 후 아이들은 일본 얘기만 나오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일본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이른바 교육여행. 여행을 끝낸 후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행 내내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유년 시절을 보낸 미국 못지않게 역시 선진국답다며 놀라곤 하던 터라 긍정적인 답을 기다렸다. 맙소사, 그들이 내놓은 첫마디는 “너무 깨끗하고 친절해서 얄미워 죽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세월이 흘렀다. 일본 지진에 지구촌이 우울하다. 뉴스를 보던 아들이 불쑥 물었다. 학교에서 성금을 거두면 할당 금액보다 두 배로 내도 되겠느냐고. 물론이다, 아들아. 나는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일본 돕기에 나선 이름 모를 수많은 주변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느꼈다. 그러면서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양국이 명실공히 진정한 친구 나라로 발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본에 희망을!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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