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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사라져도 예술 작품은 영원히 남는다

2 데미언 허스트의 ‘School:The Archaeology of Lost Desires,Comprehending Infinity and the Search for Knowledge’(2006), Mixed media installation사진 Lever House 컬렉션 제공
1 알베르토 머그라비 ©변순철 작가
맨해튼의 파크 애버뉴를 걷다 보면 아주 근사한 유리 건물을 지나게 된다. 1951년부터 있었던 이 건물은 뉴욕의 모던 건축을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건물 로비는 현대미술품 전시 공간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이곳이 뉴욕 현대미술의 중요한 컬렉터 중 하나인 알베르토 머그라비(Alberto Mugrabi)와 그의 친구 애비 로젠(Aby Rosen)이 함께 운영하는 리버하우스(Lever House) 컬렉션이다.

리버하우스의 큐레이터는 과거 위트니미술관에서 선임 큐레이터로 일했던 리처드 마셜이다. 이들은 전시를 그야말로 ‘생산’한다. 머그라비와 마셜은 함께 의논해 작가를 선정하고, 그에게 공간에 맞는 전시를 제안한다. 1년여간의 준비를 통해 전시된 모든 작품은 리버하우스 컬렉션으로 구입한다. 나중에 작가들이 유명해져서 회고전이나 중요한 전시를 할 때, 단지 작품 한두 개를 대여하는 것이 아닌 전체 전시를 역사적인 작품으로 대여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또 그렇게 소장한 작품들이 리버하우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머그라비는 단순한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를 넘어선 ‘프로듀서 컬렉터’인 셈이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인상파 컬렉터 호세 머그라비(Jose Mugrabi)다. 그의 성만으로도 그는 이미 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컬렉션과는 다른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었다. 필자는 2009년 리버하우스 리처드 우즈의 전시 오프닝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중앙SUNDAY라고 소개했더니 그는 아시아에 리버하우스 컬렉션이 소개되는 것을 매우 기뻐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당신은 어떻게 컬렉션을 시작했나.
“아버지는 콜롬비아에서 이주한 이스라엘계 미국인이다. 1982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컬렉션을 시작했다. 우리 집안은 수입 의류사업을 했는데, 미술품에 관심이 생긴 아버지가 당시 로트렉(Toulouse Lautrec), 시슬리(Sisley), 피사로(Pissaro) 같은 인상파 작가 중 가격이 너무 오르지 않은 작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83년 처음으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작품을 보고 현대작가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88년 결국 270만 달러라는 가격으로 당시 경매사 최고 기록을 세우며 로스코의 작품을 구입했다. 또 앤디 워홀은 87년부터 작품을 사기 시작했다. 아마 개인 컬렉터로는 앤디 워홀의 최다 소장자일 것이다.

아버지는 미술 공부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감정이 컬렉션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하셨다. 그 때문에 나는 당시 15세 무렵부터 옥션 룸을 다니면서 작품을 사는 것을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었다. 작품의 미학적인 부분과 미술시장에서의 취향을 동시에 훈련하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지나치게 자주사고 파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나 나는 지금 이 시대에 최고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자체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기 같은 차원이 아니라면 시장이 좋을 때 팔고 또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입해 계속 ‘제작’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술관만을 만들기 위해 컬렉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찰스 사치의 경우 결국 영국 작가 컬렉션은 국가에 기증한 것으로 발표됐다. 그렇기에 개인 컬렉션의 방향에 대해 미리 비판하는 것은 조금 시기상조인 듯하다. 내가 보스턴 벤트리 대학에서 인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할 때 아버지가 구입하는 최고의 컬렉션들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우리가 이 시대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또 ‘우리가 논하는 작품이 지금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라고 생각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리버하우스 컬렉션은 ‘전시 커미션을 통한 컬렉션 만들기’로 유명하다. 어떻게 이러한 방법을 시작했나. 리버 컬렉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전시 프로젝트는.
“사실 이 공간 로비는 51년 개관할 당시부터 최고의 디자이너들에게 커미션을 주는 장소였다. 첫 작가가 패션 디자이너 구찌였다. 즉 그런 전통이 다시 부활한 것뿐이다. 나는 이 같은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들을 매우 한정된 사람들만이 아닌 일반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뉴욕 미드타운에 있는 줄리안 슈나벨이 디자인한 그라멀시 파크호텔(Gramarcy)에도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 등의 작품을 대여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데미언 허스트의 그것들이다. 30개 이상의 포르말린 물탱크로 이루어진 데미언의 작품은 신성한 느낌까지 들 정도로 유일하고 독특한 프로젝트였다. 지금 기억하건대, 제작비 및 설치비용만으로도 4억원 정도(30만 달러)가 들었다.”

-현대미술 컬렉션이 과연 투자가 될 수 있는가.
“현대미술 컬렉션을 만드는 것은 ‘투자’ 그 이상의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금보다도 더 좋은 투자인 것 같다. 이 시장은 어떤 한계가 없이 올라가고 있다. 유동성이 강한 시장이고 물건이기에, 좋은 작품을 사기만 한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좋은 투자다. 세상이 매우 빨리 변해서 은행도 없어지고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작품은 언제까지나 남을 수 있다. 제국은 결국 사라지지만 예술작품은 끝까지 갈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이지윤씨는 숨 프로젝트 & 아카데미대표다. ‘런던 사치컬렉션 코리안 아이: 판타스틱 오디너리’의 공동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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