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북 주민, 굶어 죽고 얼어 죽고 … 올해는 고난의 초강행군”





인도적 대북 지원 15년 해온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





“북한의 잘못을 고치겠다는 대북정책은 있지만, 민족을 위한 통일정책은 안 보인다.”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58·사진) 스님의 말이다. 그는 1996년부터 15년째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 법륜 스님은 최근 “북한에서 아사자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식량난이 심각하다. 올해 초 아파트에 전기 공급이 안 돼 얼어 죽는 사람도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법륜 스님을 만나 북한의 식량난과 그 심각성을 물었다.



-최근 북한의 식량부족, 무엇 때문인가.



 “2009년 11월에 단행한 화폐개혁의 실패도 원인 중 하나다. 화폐개혁 실패로 2010년 1월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결국 그 해 1월 31일 북한 정부는 화폐개혁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화폐개혁 실패와 식량난은 무슨 관계인가.



 “화폐개혁 이전에는 북한에 시장이 활성화돼 있었다. 직장에서 나오는 식량 배급은 충분하지 않다. 가령 1년을 일하고도 몇 개월치 식량만 배급받는 식이다. 그래서 부족한 식량을 시장에서 구해야 한다. 남편이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 부인은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서 돈을 번다. 그걸로 시장에서 식량을 구했다. 그런데 화폐개혁과 함께 북한 당국은 시장을 폐쇄해버렸다.”



-화폐개혁은 어떤 식이었나.



 “구화폐 10만 원을 신화폐 1000원으로 바꿔줬다. 100대1의 비율이었다. 1인당 바꿀 수 있는 신화폐의 한도가 1000원이었다. 개인이 모아둔 나머지 돈은 모두 휴지가 돼버렸다. 화폐개혁 당시 1000원은 큰 돈이었다. 그런데 계속 물가가 뛰어버렸다. 지금은 식량 가격이 100배가 올라 명목상 화폐개혁 이전의 물가에 거의 근접한다.”



-화폐개혁 후 왜 사람이 굶어 죽었나.



 “시장을 폐쇄하니까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할 수가 없었던 거다.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니까 북한 정부가 실태조사를 했다. 북한은 공급할 물자도, 비축한 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시장을 봉쇄했으니 문제가 터졌던 거다. 결국 북한 당국은 시장을 열어줬다. 시장의 자유를 화폐개혁 이전보다 더 많이 줬다. 그러나 예전의 시장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무엇이 달랐나.



 “화폐개혁의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사람들이 모아둔 돈이 거의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돈 있는 사람이 있어야 중국에서 물건도 수입하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서 팔 것 아닌가. 당국에서 시장을 허용해도 자본이 없으니 활성화가 안 되는 거다. 결국 시장에서 돈벌이가 안 된다. 그래서 식량을 구입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올해 얼마나 굶어 죽었나.



 “전체적인 통계는 알 수 없다. 몇몇 지역만 보면 함경북도 청진에선 1월 한 달 간 150명이 동사했다. 주로 꽃제비(떠돌이)다. 평북 남신의주에선 1월에 약 200명이 아사 혹은 동사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도시의 층집(아파트)에도 전기와 난방 공급이 끊겨 얼어 죽은 사람이 많다. 땅집(일반주택)은 괜찮다. 어떻게든 땔감을 구해서 불을 땐다. 그러나 아파트는 방법이 없다. 평양의 아파트에서도 동사한 사람이 많다.”



-얼마나 동사했나.



 “그 수는 알 수 없다. 한 예로 평양 외곽에 화장터가 있다. 올해 1월 1~9일에는 하루 평균 40~50건씩 화장했다. 그런데 1월 중순에 강추위가 닥친 뒤 동사자가 급증했다. 1월 10일에는 150건, 14일은 207건, 15일은 196건, 16일은 231건으로 하루 화장 건수가 늘어났다. 주로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이 동사한 가구가 많았다.”



- 90년대 중반 식량난만큼 심각한가.



 “북한에선 90년대 중반을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불렀다. 2006년과 2007년에는 홍수로 곡물 수확량이 확 줄었다. 대신 남한에서 식량을 지원했다. 그런데 2008년에는 남한의 정권교체와 함께 식량지원도 끊겼다. 그래서 춘궁기에 농촌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북한은 2008년을 ‘고난의 강행군 시기’라고 불렀다. 그런데 2011년은 ‘고난의 초강행군 시기’라고 부르고 있다. 그만큼 식량난이 심각하다. 그러나 희생자가 90년대 중반만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적응력이 그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더 긴밀해졌다.



 “북한은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통해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어려워졌다. 그래서 중국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하려 한다. 북한은 광산과 자원 개발권 등을 중국에 넘겨서라도 식량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 시 북한이 남한으로 기울지 않고, 중국으로 기울까봐 우려된다. 통일을 생각해도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도 긴밀히 할 필요가 있다.”



백성호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