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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재앙보다 강한 일본인

전 세계가 일본의 대지진에 두 번의 충격을 받고 있다. 우선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이 가져온 참혹한 피해다. 거대한 쓰나미로 2000여 명이 숨지고, 1만 명 이상이 행방불명이다. 미야기(宮城)현의 한 마을은 주민 절반이 소식이 끊겼다. 원자력발전소의 비상도 걱정스럽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주변의 주민 21만 명을 소개하고, 바닷물로 원자로를 식히는 비상조치에 들어갔다. 불순물 혼입으로 사실상 원자로를 폐기하는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다. 일본 열도가 연일 ‘지진-쓰나미-원전 비상(非常)’의 삼각파도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한 일본인들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대피요원을 따라 차례차례 피해 현장을 빠져나오고, 초등학생들마저 교사의 인솔로 줄을 맞춰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 지하철·버스가 끊기자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지급한 긴급 구호물품을 짊어진 채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 뛰지도 않고 3~4시간씩 걸어서 갔다.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했다. 상상을 초월한 대재앙과, 상상을 뛰어넘는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대규모 자연재해가 지나간 뒤 일어난 숱한 무질서와 혼란상을 목격해 왔다. 지난해 22만 명이 희생된 아이티 지진이 대표적이다. 오죽하면 “지진보다 무법천지(無法天地)의 약탈과 폭력이 더 무섭다”고 했을까. 아이티가 개발도상국이라서 유별난 게 아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퀸 미국의 뉴올리언스도 폭력과 부패가 휩쓸었다. 이런 기억들로 인해 일본인들의 차분함이 한층 돋보이는지 모른다. 끔찍한 참상 앞에 울부짖거나 눈물을 쏟는 일본인들은 찾기 어렵다. 지진을 틈타 강도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TV 화면에는 모두 차례차례 줄을 서 구호식품을 받아가거나, 매점 앞에서 차분히 기다린 뒤 필요한 만큼만 돈을 주고 사가는 장면들로 채워지고 있다.



 단지 지진이 잦다는 일본의 지리적 특수성만으로 이런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철저한 내진 설계와 발 빠른 경보 시스템이 피해를 줄인 것은 사실이다. 단단한 사전교육과 대피훈련도 한몫한 게 분명하다. 한 나라의 진면목(眞面目)도 대사건이 닥쳐야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국민성이다.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 앞에서 일본인들은 침착한 국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때 일본 엔화는 뜻밖으로 20%가량 평가절상됐다. 일본의 국민성을 오판한 해외 투자자들은 혼이 났다. 최근 엔화 강세도 국제금융시장이 재앙 앞에서 단결하는 독특한 국민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침착한 대처로 한신 대지진을 딛고 스스로 일어섰다. 이번 대지진의 상처도 언젠가 치유될 것으로 믿는다. 오히려 우리는 일본을 보며 우리 사회 일각의 뒤틀린 자화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난 현장에서 TV카메라가 돌아가면 표정을 바꿔 대성통곡한 적은 없는가. 천재지변으로 비행기가 조금만 연착해도 우르르 몰려가 아우성치진 않았는가. 모든 책임을 무턱대고 정부에 돌리며 난리를 피운 적은 없었는가. 이웃 나라의 아픔을 외면한 채 한국이 챙길 반사이익을 먼저 따진 경우는 없었는가…. 우리는 스스로 치열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재난과 위기 때 우리 사회의 절제되지 못한 사고와 대응방식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일본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많고,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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