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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칼럼] 차라리 ‘카파라치’라도 부활하자

필자는 ‘뚜벅이’다. 가끔 운전을 하지만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많이 걷는다. 그런데 서울시내에서는 걸어 다니기가 참 쉽지 않다. 아찔하고 위험하고 불편해서다. 곳곳에 보행자를 위협하고 짜증나게 하는 ‘지뢰’가 널려 있다.

‘보행권(步行權)’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쉽게 말하면 마음 놓고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권리다. 뚜벅이에겐 특히나 꼭 보장받고 싶은 권리다. 이를 침해하는, 직접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서울시내 서소문에서 시청 사이에는 기업체가 즐비하다. 그래서인지 각종 서류나 작은 물품을 실은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넘쳐난다. 이들이 규정대로 도로로만 다닌다면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문제는 출퇴근시간대 등 차량이 몰려 도로가 혼잡하게 되는 시점이다. 이때 길을 걷다 보면 느닷없이 도로에서 인도로 뛰어드는 오토바이와 마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론 보란 듯이 서너 대가 한꺼번에 정면으로 달려온다. 속도도 거의 줄이지 않는다. 당황해 얼른 피하거나 순간적으로 판단이 안 돼 우뚝 걸음을 멈춘 적도 여러 번이다.

보행자가 가장 안심하고 다녀야 할 인도 위에서 오히려 섬뜩한 불안감을 느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다. 실제 사고도 적지 않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오토바이의 인도 침범으로 인한 사상자는 한 해 적게는 410여 명에서 많게는 570여 명에 달한다.

횡단보도 통행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역 인근의 염천교 사거리를 보자. 이곳은 네 방향의 횡단보도에서 동시에 파란색 보행신호가 켜진다. 이때는 차량들이 모두 정지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출퇴근시간대면 보행자가 길을 건너는 사이사이 택시와 버스가 수시로 지나쳐 간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 차량을 살펴야만 한다. 얼마 전에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다 바로 1~2m 앞에서 급정거하는 시내버스와 마주치기도 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국내에선 최근 10년간 해마다 평균 2600~2800명의 보행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중 횡단보도 사고가 40%에 육박한다. 보행자의 무단횡단도 많지만 차량의 신호 무시도 적지 않은 탓이다.

최근 보행자를 불편하게 하는 장면이 더 추가됐다. 지난해 말부터 공휴일에 전통시장이나 고궁, 종교시설 인근 도로에 주정차를 허용한 것 말이다. 취지는 좋다. 시내는 주차공간이 부족해 차를 가지고 나온 나들이객이 주차를 못해 애를 먹기 일쑤였다. 가장자리 차로에 주차가 가능하면 이 애로사항은 제법 해소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차들이 도로를 넘어 인도까지 점령하고 있어 문제다. 어른이 옆으로 걸어야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촘촘히 얌체주차를 해 놓기도 한다.

이들 세 가지 사례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경찰이나 지자체의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숱하게 문제의 장소를 지나면서도 단속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해 10월 경찰이 오토바이의 인도 통행을 한 달간 집중단속한 게 그나마 최근 사례다. 그 뒤엔 역시나 단속은 흐지부지다. 염천교 사거리에는 신호 위반을 단속하는, 그 흔한 무인카메라조차 없다. 또 경찰은 공휴일에 도로 주정차를 허용하면서 인도나 횡단보도를 방해하는 행위는 단속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단속은 거의 안 이뤄진다.

보행자는 공권력의 무관심 속에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경찰이나 지자체에서는 인력과 장비 부족에다 집중단속 시 쏟아질 대량 민원 등 각종 이유를 댄다. 그렇다면 차라리 ‘카파라치(carparazzi)’라도 부활하자. 신호위반·인도침범에다 불법 주정차까지 모두 신고 대상으로 하자.

교통위반 차량을 촬영해 신고하고 정부 보상금을 타는 카파라치제도는 2001년 시작됐다. 그해 1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신고건수만 430만 건에 달하기도 했다. 이 당시 교통 위반과 사고가 줄어든 것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하지만 한 해 수천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전문신고꾼까지 등장한 데다 사회적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비판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다 2003년 초 폐지됐다.

진짜로 카파라치를 부활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카파라치의 순기능과 역기능 중 순기능을 대체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더 이상 보행권을 방치하지 말자는 얘기다. 오죽하면 잊혀진 이름, 카파라치를 다시 떠올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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