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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떠난 법정, 남은 관세음보살상







손민호 기자



아침 일찍 길상사를 들렀다. 길상사는, 적어도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법정이 입적한 지 1년이 지난 이튿날이었다.



 관세음보살상(사진) 앞에 섰다. 길상사에 들르면 늘 극락전 본당보다 먼저 가고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혹 눈여겨본 분 계시는지 모르겠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은 여느 관세음보살과 다르게 생겼다. 우리가 익숙한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답게 인자하고 후덕한 인상이다. 불경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몸집도 제법 두툼하다. 관세음보살은,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내 어머니를 닮아 있다.



하나 길상사 관세음보살은 가냘프다. 당장 각혈이라도 하고 스러질 듯이 야위었다. 온화한 미소도 없다. 무심한 고개 들어 물끄러미 경내를 내려다보고 있을 따름이다. 어찌 보면 심심해 보이고, 어찌 보면 피곤한 인상이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은 2000년 조각가 최종태 선생이 법정의 부탁으로 조각한 것이다. 최종태 선생은 깊은 천주교 신자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길상사 관세음보살은,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 온갖 설움과 역경을 이겨낸 성인의 무표정이 읽힌다. 여기엔 세상의 어떤 경계도 초월한 신성(神聖)이 담겨 있다.



 2000년은 고 김영한(1916∼99)씨가 법정에게 길상사 터를 시주하고서 3년이 지난 해다. 김영한은 한시대를 풍미했던 요정 대원각을 법정에 건네며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팔각정에서 맑은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김영한 하니까 잘 모르실지 모르겠다. 김영한은, 한때, 정확히는 한 남자로부터만 자야(子夜)로 불렸다. 그 남자가 백석이다. 그러니까 김영한은 한국 현대시가 자랑하는 천재 백석의 여인이다. 백석이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부분)고 노래했던 그 여인이다. 시인과 기생의 사랑은 하도 지극해 지금도 시리다.



 백석이 먼저 가고 자야가 뒤따라갔다. 이윽고 법정도 갔다. 시인도 기생도 스님도, 지금은 아무도 없다. 옛 주인 모두 떠난 절집엔 성모 마리아 닮은 관세음보살만 오도카니 남아 있다. 부질없다. 참으로 부질없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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