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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12> 강진 다산 유배길

오늘은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유배길을 걷는다. 길에 붙은 이름 그대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유배 시절을 되짚는 길이다.



[중앙일보·프로스펙스 공동기획]
때론, 혼자 걸어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오로지 한 인물만의 자취를 좇아 난 트레일은 이례적이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이 길은 여느 길보다 사연이 곡진하다.



지난해부터 이 길의 소개 시점을 고민하다 백련사 동백 피는 시절에 내놓기로 했다. 하나 지난주 내려갔을 때는 아직 동백이 일렀다.



땅바닥 뒹구는 붉은 꽃송이는 보지 못하고 백련사 원정 스님한테 차 한잔 얻어 마시고 돌아왔다. 이번 주부터는 달라져 있으리라 믿는다.



당신에게 권한다. 당신이 지금 세상과 불화를 앓고 있다면 200년 전 다산이 걸었던 이 길을 걸으시라.



이왕이면 혼자서 걸으시라.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산길 어느 모퉁이에 홀로 서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내팽개쳐진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시라.



그리고 그 사람은 마침내 18년 세월을 견뎌내고 역사 앞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1 다산초당.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생전의 추사는 다산을 흠모했었다. 2 남포다리에서 바라본 강진만 갈대밭. 갈대가 어른 키를 훌쩍 넘긴다. 3 다산유물전시관에서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 강진군에서 두충나무 길을 조성해 놓았다. 4 강진만 갯벌에 비친 아침 햇살. 5 백련사 오솔길 마지막 고개. 이 고개를 내려가면 백련사다. 200년 전 다산은 벗 혜장을 만나러 수도 없이 이 고개를 넘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백련사가 보인다. 6 백련사 오솔길 끄트머리. 왼쪽에 보이는 산자락이 만덕산이고 사진 아래 그늘진 곳이 백련사 차밭이다. 아직은 푸른 동백나무 숲을 통과하면 백련사 경내다.









# 삼남대로, 강진 그리고 다산



강진에 있는 다산 유배길은 본래 삼남대로의 한 갈래다. 서울에서부터 나주까지 내려와 강진·해남 방향으로 길을 틀어 제주 관덕정까지 이르는 1500리 길이 삼남대로다. 길의 이력은 남도로 유배를 떠났던 숱한 선비의 행적을 되밟는다. 다산도 이 길을 두 번 걸었다. 1801년 음력 11월 신유사옥에 연루돼 유배되면서 서울에서 나주까지는 형 약전(1758∼1816)과 함께 걸었고, 나주부터 강진까지는 혼자서 걸었다. 그리고 1818년 9월 유배가 풀려 북한강 두물머리에 있는 집에 돌아가려고 이 길을 다시 걸었다. 그가 이 길을 처음 밟은 건 마흔 살 겨울이었고, 두 번째 밟은 건 쉰일곱 살 가을이었다. 쉰일곱의 걸음이 마흔의 걸음보다 가벼웠다.



 다산은 강진에서 정확히 16년 9개월을 살았다. 처음엔 강진 외곽에 있는 주막 쪽방에 빌붙어 살았다. 역사에 나오는 강진의 첫 거처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는 ‘강진 읍성 동문 밖에 있는 밥집’, 즉 주막이다. 거기 쪽방에서 다산은 꼬박 4년을 버텼다.



 이어 다산은 강진읍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성사 보은산방과 강진 선비 이학래의 집에서 3년 정도 머무르다, 1808년 봄 만덕산 기슭에 있는 외가의 초가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초가에서 그는 유배가 끝날 때까지 십 년 하고도 6개월가량을 살았다. 그 초가의 이름이 다산초당이고, 그 초가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다산의 저서 500여 권 대부분이 쓰여졌다.



 강진군은 다산이 남긴 흔적을 고스란히 좇아 60㎞ 남짓의 길을 냈다. 이름하여 다산 유배길이다. 다산 유배길은, 다산이 두 번 넘은 월출산 누릿재부터 보은산방을 거쳐 백련사∼다산초당을 지나 다산유물전시관까지 이어진다.



# 벗 찾아 가던 길, 백련사 오솔길



다산 유배길 150리 중에서 유독 발길이 머무르는 길이 있다. 강진군에서 다산 유배길을 내기 한참 전부터 백련사 가는 길, 또는 백련사 오솔길이라 불리던 길이다. 좁게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동백숲까지 2㎞ 산길을 가리키고, 넓게는 다산유물전시관에서 다산초당∼백련사까지 4㎞ 남짓한 길을 가리킨다. 길은 10리 길이지만 이야기는 삼천리를 울린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은, 말하자면 벗으로 가는 길이다. 다산은 강진에서 열 살 아래인 백련사 혜장선사와 각별한 우정을 쌓았다. 다산이 남긴 시편을 보면 삼경(三更), 그러니까 자정 즈음에도 다산은 혜장을 만나러 횃불 밝히고 이 길을 걸었다. 그렇게 수없이 이 길을 오가며 다산은 혜장에게 유학을 말하고 혜장은 다산에게 불교를 말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차(茶)가 있었다. 만덕산은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라 불렸고, 다산이라는 호가 거기서 나왔다.



 다산초당은 세 건물로 이뤄져 있다. 제자들이 기거했던 서암과 학문을 연구했던 초당, 그리고 다산이 기거했던 동암이다. 초당과 동암 사이에 파놓은 작은 연못은 다산이 일군 것이다. 연못 위에 지금은 흔적 희미한 옛 채마밭이 있다. 여기서 다산은 손수 채소를 길렀다. 동암 오른편에 천일각이 있다. 다산 시절에는 없던 것이지만 구강포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빼어나다. 다산도 이 자리에서 구강포에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다봤을 것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백련사 오솔길은 험하지 않다. 여느 오솔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고개를 넘어 마침내 백련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200년 전 그 사내처럼 절집에서 친구가 기다리지 않아도 반갑고 뿌듯하다. 다산이 74세를 일기로 숨진 날이 음력 2월 22일이었으니, 올해는 오는 26일이겠다.











◆길 정보



150리 다산 유배길은 다채롭다. 고개를 넘고 갯벌을 따라 걷고, 산을 넘고, 절을 들르고, 차밭을 가로지르고, 문화유적을 만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이 너무 짧다 싶으면 백련사에서 내려와 구강포 갯벌을 따라 제방길을 걸어 남포다리까지 나아가도 좋다. 얼추 10㎞ 거리다. 해질 녘 구강포 갈대밭은 순천만만큼 곱다. 강진군 문화관광과 061-430-3173, 강진다산수련원(www.ydasan.com) 061-430-3786. 강진은 먹을 것도 많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3대 한정식집이라고 치켜세운 해태식당(061-434-2486)도 그대로 있고, 남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어집이라는 목리장어센타(061-432-9292)도 여전하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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