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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청목회와 로펌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꼴이기는 했다.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 관련 의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으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한 것 말이다. 민생 관련 법안조차 제때 통과 못 시키고 싸움질만 해대던 여야가 제 잇속 챙기는 데는 ‘쿵짝이 잘 맞는’ 모습이 얄밉게 보인 탓인지 가히 융단폭격이라 할 만한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로비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 로비는 청원권이라는 국민의 기본 권리로 간주된다. 그래서 등록만 하면 누구나 로비스트가 될 수 있고 로비 행위도 자연스러운 정치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이나 법이 만들어질 때 이해 당사자들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정책 결정자들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미국에서의 논리다. 그렇다면 로비 하면 항상 불법이라는 단어가 수반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로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을까.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하면 로펌(법무법인)이나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거액의 보수를 받는 일은 이제 관행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로펌에서 굳이 전직 판사, 검사 등 법조인만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행정부의 전직 고위 공직자들도 영입 대상이 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7년 8월 금융감독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1년간 대형 로펌 고문을 지내면서 6억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하고,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퇴임 후 15개월간 로펌 고문으로 일하며 약 5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왜 법조인도 아닌 이들에게 로펌에서 이런 거액의 돈을 주었을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로 미뤄볼 때 아마도 그런 거액에 해당하는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로비는 의회에 집중되고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법안 제출부터 통과까지 의회만이 그 권한을 갖는 만큼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정책 결정은 사실상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고, 국회는 그저 뒤치다꺼리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해관계가 걸린 중대한 정책 결정을 내리기 전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고위 관료의 전직 상사가 로펌이나 대기업의 ‘고문’이 되어 찾아오게 되면 연(緣)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그 상사를 그저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본인도 퇴직하면 비슷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조계의 전관예우 역시 같은 논리 때문일 것이다. 전직 고위 공직자들에게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그들의 ‘자문’을 대가로 거액을 지불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로비는 이렇게 이뤄진다.



 문제는 청원경찰들처럼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기업이나 거대 로펌과 달리 그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을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끈’을 갖고 있지 않다. 대기업이나 거대 로펌과 달리 청목회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핵심 정책 결정자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불법 로비라고 비난받고 있지만, ‘표’에 예민하고 정치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는 국회의원들이 그나마 그들이 찾아가 기댈 곳이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말하지만, 경제적·사회적 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접근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개방되어야 공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로비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정치자금 수사 때마다 나오는 ‘대가성’이라는 말이다. 대가성이 밝혀지면 처벌한다는데 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돈을 주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정치자금과 관련해서 보다 중요한 점은 누가 얼마를 냈으며 어디에 썼는지 자금의 출입 경로를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정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에는 비용이 수반한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비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만큼 적법하고 투명하게 그 비용이 조달될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을 바꾸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물론 이번처럼 도둑질하듯 바꿔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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