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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7) 골프 세상의 두 독재자, 그리고 마스터스









예수 말고도 호수 위를 걸은 자가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34년간 회장을 역임하며 ‘오거스타의 신’이라는 불렸던 클리퍼드 로버츠(사진)였다. 절대권력을 휘두른 그는 오거스타와 마스터스의 길이요 진리였다. 클럽 회원들은 그를 예수에 빗대 ‘물 위를 걷는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날 로버츠가 실제 물 위를 걸었다. 그는 골프장 호수 수면 바로 아래에 발을 디딜 장치를 해 놓고 그 위를 걸은 것이다.



독재자라면 골프에도 있었다. 로버츠는 클럽 공동 설립자인 보비 존스를 5년 동안 집요하게 설득해 대회 이름을 마스터스로 바꿨고, 존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코스를 개조했다. 무명의 주식중개인이었던 로버츠는 결국 골프의 성인이라 불린 존스를 밀어내고 클럽 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는 마스터스 대회에서 회원은 물론 갤러리와 선수들, 언론까지 통제했다. 그는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마스터스의 선수는 모두 백인이고 캐디는 모두 흑인일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종을 구분했고 여자도 차별했다. 오거스타는 아직도 여성을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여성 단체가 이에 항의하며 마스터스 중계방송 광고 불매운동을 벌였는데 오거스타는 방송사에 중계권을 공짜로 주면서 버텨 이겼다. 로버츠 사후의 일이지만 클럽 정책에 관해선 절대 물러서지 않는 그의 영향이 컸다.



골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독재자는 미국 CBS방송에서 골프 중계를 38년 동안 한 프로듀서 프랭크 처키니언이 꼽힌다. 그의 지배가 얼마나 강했던지 별명이 아야톨라였다. 1989년까지 최고 지도자로서 이란을 통치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름을 딴 것이다. 처키니언은 그 별명이 좋다고 골프 클럽 샤프트에 아야톨라라는 이름을 새기고 다녔다. 처키니언은 요즘 말로 ‘방송 권력’이었다. 어떤 선수가 TV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그가 결정했다. 매우 친한 그레그 노먼은 성적이 나빠도 중계 부스로 나와 인터뷰를 하곤 했다. 그는 89∼86타를 치며 무너지고 있는 신인 선수의 참담한 모습을 클로즈업하기도 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지만 잔인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휘하의 TV 출연진을 스타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만약 튀는 캐스터나 해설자가 있다면 무엇으로 맞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세게 후려 패겠다. 우리는 스타를 원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자체가 스타다. 만약 스타가 꼭 있어야 한다면 내가 그 빌어먹을 스타를 하겠다”고 말했다.



독선적이었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냉정한 두 사람이 골프의 수준을 한두 단계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그들의 열정은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에 미지근한 주위 사람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전 골프 대회 3, 4라운드는 토요일에 한꺼번에 몰아서 했다. 로버츠가 마스터스를 나흘 경기로 바꾸면서 다른 대회들도 일요일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로버츠는 갤러리와 선수를 구분하기 위해 로프를 쳤고 갤러리용 책자, 출발 시간표가 들어간 코스 지도, 코스 내 리더보드를 만들었다. 언더파는 빨간색, 이븐파 이상은 초록색 숫자로 표시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그다.



처키니언은 방송에 총 타수가 아니라 파를 기준으로 한 리더보드를 내보냈다. 카메라를 장착한 비행선을 띄우고 그린 옆에 중계탑을 세우는 등 다양한 카메라 앵글을 만들었다. 생생한 상황을 전하는 리포터들을 코스에 내보낸 것도 처키니언의 시도였다. 티잉그라운드에 마이크를 설치해 볼의 타격음을 들려줬고 홀 안쪽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시청자가 잘 볼 수 있게 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당시엔 혁명이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일군 마스터스는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짧은 전통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가장 동경하는 대회가 됐다. 로버츠는 1977년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15번 홀 연못에 유해를 뿌려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회원들은 코스에 들어올 때마다 로버츠의 영혼을 느낀다고 한다.



처키니언은 지난 5일(한국시간)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생전에 녹음된 입회 연설과 함께 5월 10일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 그는 PD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웠다. 그 덕에 오거스타 골프장은 “스포츠의 가장 아름다운 극장”으로 꼽힌다. 후배 방송인들은 “골프라는 스포츠가 중계되는 한 처키니언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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