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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금요헬스&실버] 석해균 선장 구한 ‘집념의 의술’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막장 같다는 생각 들지만 … 눈부신 수술실이 기다려
교과서에 쓰인 생존율 … 2~3배 높이는 게 의술



여섯 발의 총알을 맞은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45일간의 치료기를 공개하며 의술과 인간 생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생명을 살린 아주대병원 외상(外傷)외과 이국종(42) 교수는 10일 새벽 2시까지 메스를 잡고 있었다. 비장 파열로 응급실로 밤중에 실려온 40대 남자의 생명을 구하는 수술이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그저 웃었다. 그리고 “늘 있는 일인데…”라고 했다. 1월 21일 삼호주얼리호 피랍 선원 구출작전 당시 복부 관통상을 입은 석 선장과 이 교수는 45일째 고락(苦樂)을 같이하고 있다. 석 선장 못지않게 ‘닥터 이국종’의 의술과 인간애는 또 다른 영웅을 탄생시켰다.



 “그동안 집에 딱 하루(8일) 갔어요. 하루도 비울 수 없었어요.”



 이 교수는 “언제 환자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라 항상 3분 대기조 생활을 한다. 견딜 만하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의 한 의사 출신 간부는 “이국종은 바보 같다”고 말했다. 장기 파열, 손다리가 잘려나간 환자를 보는 일이 돈벌이도 안 되고 ‘3D 중의 3D’로 저어하는데 그런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큰 대학병원 외과 의사가 오후 11시에 대장암 환자를 수술하면 인센티브가 생긴다.



 1990년대 중반 이 교수가 전공을 선택할 무렵에는 정형외과나 성형외과가 최고 인기였다. 이 교수는 일반외과 전문의가 된 이후 외상외과를 세부 전공으로 택했다.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과목이었다. 외상외과는 단순하다. 칼에 찔린 조직폭력배나 총상 환자, 공장에서 볼트가 몸에 박힌 환자 등을 치료한다. 연구를 많이 해서 세계적인 잡지에 논문을 실을 기회도 적은 분야다.



-왜 외상외과 의사의 길을 택했나.



 “2000년 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간·담도·췌장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온몸이 뭉개져 안타깝게 죽어가는 이들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신속히 잘 치료하면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다. 마침 당시 외과 주임교수가 권했고, 외상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후회하지 않나.



 “응급센터를 찾는 환자는 육체 노동자와 외국인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을 치료하는 현재의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 후배들이 외상외과를 지원하기에 ‘개업하기 힘들고 취직 자리도 없다’고 말렸다. 하지만 수술장에 들어설 때 막장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눈부신 수술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 이 교수와 석 선장은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교수가 몸 담고 있는 아주대와 이 병원 외상센터도 마찬가지다. 의료계의 스타로 뜨고 있다.



-석 선장은 지금 상태가 어떤가.



 “생존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농담을 할 정도로 좋아졌다. 10일부터 죽을 먹기 시작했다. 석 선장은 예전에 인도네시아 해적들이 도끼로 위협했을 때 1달러 지폐를 던졌다고 한다. ‘내가 명색이 선장인데 해적에게 굴복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



-석 선장이 걱정하는 게 있나.



 “생계 걱정으로 잠을 잘 못 이루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은 관심이 집중되고 국민적 영웅이 돼 있지만 곧 잊혀질 것이란 사실을 선장님도 잘 알고 있다.”



 이 교수는 총알이 6개나 박혀 만신창이가 된 석 선장을 살려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국 후송이 위험하지 않았나.



 “오만 가기 전 1월 24일 석 선장의 혈액검사 결과를 봤다. 일반의사들이 보면 혈소판이 낮다는 데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백혈구 상태를 보고 몸의 여러 곳에 범발성 혈액응고장애(DIC)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는 혈관을 막거나 출혈을 일으키며 여러 장기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병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16유닛의 혈소판을 주입했다. 일반 의사들은 환자가 스스로 호흡하면 금방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혈전증(피떡)이 언제든지 생겨 환자가 숨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석 선장을) 하루에 X레이를 6번 찍고 200가지 검사를 한 적도 있다.”



-총상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나.



 “엽총 사고 환자를 치료한 적은 있지만 실제 총상은 석 선장이 처음이다. 총상 전문가라서 오만에 갔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국내 산업현장에서 분당 5000회의 속도로 고속 회전하는 기계에서 볼트·너트 등이 튕겨져 나와 몸에 박힌 근로자들이 온다. 이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게 총상과 거의 비슷하다.”



-석 선장보다 더 중한 환자가 있었나.



 “석 선장의 진단명은 14가지다. 내가 치료한 환자 중 20가지가 넘는 사람도 있다. 2t 기계에 깔려 가슴·복부·골반 등 대부분의 장기와 뼈가 으스러진 40대 남성도 회생시킨 적이 있다. 교과서에는 중증 외상 환자의 생존율이 10∼20%라고 돼 있지만 우리 병원은 40∼50%다.”



 이 교수에게 “왜 오만행을 결심했느냐”고 물었다.



 “그냥 나랑 같은 해군 출신이라서요. 환자 치료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국종 교수=1969년 서울생으로 95년 아주대 의대 1회(88학번)로 졸업한 외상외과 전문의. 2000년 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간·담도·췌장 환자를 치료했으나 사고 등으로 안타깝게 숨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외상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2002년부터 아주대병원에 재직 중이며 지금은 중증 외상 특성화센터 소장 겸 부교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외상외과와 영국 로열런던병원 트라우마 센터에서 연수했으며 중증 외상환자 1300여 명을 치료해 왔다. 이런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주한미군 의무사령관·백악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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