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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수쿠크법









이자(利子)를 자전(子錢)이라고도 하는데 자(子)자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역사서인 『국어(國語)』 경왕(景王) 21년조에는 모권자(母權子), 자권모(子權母)라는 이름의 돈이 나온다.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도 나오는 화폐 이름인데, 후한(後漢) 때의 학자인 응소(應劭)는 ‘모(母)는 무겁고 크기가 두 배이며, 자(子)는 가볍고 반으로 작다’고 두 돈의 성격을 풀이했다. 어머니인 본전에서 이자가 나왔기 때문에 자(子)자를 쓰는 것이다.



 『회남자(淮南子)』 만필술(萬畢術)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새끼를 잡아오면 어미가 스스로 잡히는 청부(靑蚨)라는 푸른 곤충 이야기다. 어미의 피를 81문의 돈에 바르고, 새끼의 피도 81문의 돈에 바른다. 자혈(子血)을 바른 돈은 갖고 있고 모혈(母血)을 바른 돈만 사용하면 돈이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자 놀이하는 돈이 자모전(子母錢), 곡식이 자모곡(子母穀)이다.



 고려 문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 후집(東國李相國後集)』에는 자모지법(子母之法)이란 말이 나오는데,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법이다. 이때 1년 이자는 2할을 넘지 못했다. 고구려 고국천왕은 재위 16년(194)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해 봄에 관곡(官穀)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10월에 돌려받는데 무이자였다. 고려 때의 흑창(黑倉)·의창(義倉)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태조실록』 1년(1392) 9월조에도 “가을 추수 후에는 다만 본 수량만 받는다”라고 이자가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명종 때 부족분을 채운다는 명분으로 1할의 이자를 받는 일분모회록(一分耗會錄)으로 되었다가 병자호란 후에는 3할의 이자를 받는 삼분모회록(三分耗會錄)으로 변질되면서 백성들에게 강제로 떠넘기는 고리대가 되었다. 새와 쥐가 축내는 분량을 미리 떼고 주는 선이자 성격의 작서모(雀鼠耗)까지 횡행했으니 국가가 가난한 백성들을 상대로 악질 고리대 놀이를 한 셈이다.



 이슬람 채권에 면세 혜택을 주는 수쿠크법에 대한 개신교계의 반발이 심하다. 코란뿐만 아니라 『성서』에도 “이자를 받지 말며(출애굽기 22장)”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신명기 23장)”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느헤미야 5장)” 등 이자를 금지하는 구절이 많다. 한국 개신교는 그 막강한 자본력으로 성서의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반문(反問)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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