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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인간에 대한 사랑 보여준 ‘TED 축제’







김한별
지식과학부 기자




로저 에버트는 영화 평론계의 전설이다. 1975년 영화평론가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TV에서 영화 비평쇼를 진행하며 그가 선보인 엄지손가락 평점(two thumbs up)은 지금도 ‘최고의 작품’을 뜻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에버트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2002년부터다. 암 수술과 재발, 재수술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그는 갑상선과 침샘, 턱뼈 일부를 잃었다. 방사선 치료 부작용으로 수술 부위 경동맥이 파열됐고, 호흡 곤란으로 기관지를 절개했다. 결국 그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에버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가 찾아낸 대안은 컴퓨터였다. 글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읽어주는 텍스트 음성전환(TTS) 프로그램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TV쇼 대신 인터넷 블로그를 정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세계 지식인들의 축제’ TED 콘퍼런스가 막을 내렸다. 나흘간 TED 무대에 선 강연자는 50명이 넘는다. 수많은 과학·기술·예술 천재들이 무대에 올랐지만, 피날레를 장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에버트였다. 그는 무릎 위에 얹은 애플 노트북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혁명 덕에 목소리를 갖게 됐다. …인터넷 글쓰기가 내 목숨을 살렸다”고. 롱비치 공연예술센터를 가득 메운 청중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나흘간 TED를 취재하며 많은 지적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식이나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였다. TED 지식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지를 고민했다.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만든 데니스 홍이 그랬고, 자신이 후원하는 복지·교육가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사회자로 나선 빌 게이츠가 그랬다. 소수 엘리트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륜을 과시하거나, 대기업들이 자사 신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 여느 포럼·콘퍼런스와는 달랐다.



 최근 한국에도 TED와 비슷한 국제 모임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하지만 형식만 본뜬다고 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기술이냐다. 올해 TED가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다.



김한별 지식과학부 기자 롱비치(미국)에서



◆TED=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로 첨단 기술과 지적 유희, 예술과 디자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행사다. 다보스 포럼이 ‘거대담론’을 논하는 자리라면 TED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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