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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학 주인은 누구인가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3월 캠퍼스는 활기가 넘친다. 보송보송한 청춘이 싱그럽다. 청춘들의 출발은 힘차다. 세상을 거머쥘 듯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생이 되었으니, 참 장하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한다. 비싼 등록금을 냈지만 대학은 주인을 객(客) 취급한다. 100명, 200명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기도 한다. 강의가 맛있을 리 없다. 지방 출신은 더 좌절한다. 대학 기숙사 수용률이 평균 17%에 불과하니 숙식 해결이 급선무다. 하숙비는 월 40만~50만원, 자취를 해도 부담이 만만찮다. 청춘들의 봄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얼마 전 어느 대학 이사장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대학의 주인은 법인이다. 학생이 어떻게 주인인가.” 농(弄)이 아니었다. “학생들 주장이 괘씸하다. 대학은 내 것”이라는 얘기였다. 법적 문제가 아닌데 그의 태도가 황당했다. 순간, 학생을 연간 1000만원짜리 돈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성을 엿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대학 총장의 올해 입학식 축사를 읽어봤다. “글로벌 리더가 되라” “진취적으로 도전하라” “지성인이 되라”는 등의 의례적인 당부가 주류였다. “잘 가르치는 경쟁 하겠다” “학생들의 고충을 함께 나누겠다”와 같은 피부에 와닿는 얘기는 없었다.



 4년 전 비슷한 얘기를 들었을 올해 졸업생들은 어떻게 됐을까. 열 명 중 다섯 명은 직장을 얻지 못하고 교문을 나섰다. 물론 경제 영향이 크다. 하지만 대학은 잘 가르쳤는지, 무슨 노력을 했는지 성찰(省察)하지 않는다. 되짚음은 도약의 기본인데 헛똑똑이 같다. 졸업생 수만큼 다시 뽑는 데만 열중이다. 고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교수들이 치열하지가 않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명강의가 저절로 나왔을까. 철저한 준비와 학생과 호흡하는 쌍방향 강의, 열정이 밑거름이 됐다. 우리도 훌륭한 교수들이 많지만 강의의 질과 경쟁력은 생각해 볼 문제다. 매년 똑같은 메뉴로 먹고사는 이들이 있다.



 직원 혁신도 절실하다. 정년 보장에 상당수가 방학 중 단축 근무, 급여 짭짤…. 그러니 신이 숨겨 놓은 직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원의 존재 이유는 학생이다. 그런데 주인은 냉골로 내몰리는데 자기들만 온돌방 붙박이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전전하고, 밥값 아끼려 구내식당에 몰리고, 낡은 실험실에서 추위에 떠는 학생들과는 딴판이다. 직원들이 장학금을 내놨다든가, 스스로 임금을 깎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직원들은 황금시대를 언제까지 누릴 것인가.



 3월 캠퍼스 새내기들의 활력은 대한민국의 경쟁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학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며 국가 경쟁력은 대학에서 나온다. 미래 한국을 이끌 주인공들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대학이 울타리가 돼 줘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대학에 묻는다. “너는 한 번이라도 주인에게 따뜻해 본 적이 있는가?”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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