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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엄기영과 한나라당 … 탈선의 탱고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한나라당과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 이불 속에 들어간 것은 한국 사회의 정신사(精神史)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공동체를 기만(欺瞞)하는 지식인이나 그런 행동을 조장하는 집권당이나 도덕적 책임이 똑같다. 그 사람에 그 정당이다. 이런 탈선의 합작은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유권자의 이성을 유린하는 것이다.



 MBC는 ‘국영법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주식의 70%를 소유한 공영방송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만든 민영 언론사가 아니다. 엄기영은 그런 공영방송의 기자와 앵커를 지내고 사장에까지 올랐다. 공영방송의 사장에게는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과 높은 도덕적 처신이 요구된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2008년 4월 MBC ‘PD수첩’은 광우병에 관한 심각한 오보로 촛불 폭력사태의 불씨를 제공했다. 사법적 문제와는 별개로 이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심판을 받았고 MBC는 사과방송을 했다. 보도가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생각하면 엄 사장은 사죄하고 사퇴했어야 마땅하다. 청와대 대변인도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2008년 11월 일본 니혼TV의 유명한 고발 프로는 허위 증언자에게 속아 지방자치단체의 비리를 주장하는 오보를 냈다. 구보 신타로 사장은 이듬해 3월 관계자들을 징계하고 사퇴했다. 니혼TV에 비하면 MBC 오보는 사회적 손실이 몇 배나 컸는데도 엄 사장은 책임을 회피했다.



 2008년 여름이라면 이명박 정권은 사춘기였다. 초기 내각파동이 있었지만 정권은 국정의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순정을 짓밟은 게 광우병 촛불 폭력이다. 당시 촛불 허위난동에 용감히 맞섰던 인물 중 하나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다. 당이 훗날 그를 최고위원으로 영입한 것은 그의 소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런 정권이 지금은 거꾸로 사태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방송사의 사장 출신을 끌어들였다.



 엄기영은 지난해 2월 사장을 그만둔 후 최근까지 MBC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매달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실상 공영방송의 ‘준(準)임원’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7월엔 강원 재·보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의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후보와 식사를 하면서 격려했다. 세상 사람과 한나라당이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그렇게 했다. 자신은 조직으로부터 매달 1000만원이 넘는 금전적 혜택을 받으면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조직의 가치엔 칼질을 해댔던 것이다.



 엄기영은 2000년 위암 장지연 기념사업회가 주는 언론상을 받았다. 위암 선생은 1905년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오늘 목놓아 통곡한다)’이라는 사설을 썼던 인물이다. 기념사업회는 엄기영에게 준 상을 취소해야 한다.



 공영방송 MBC에는 매년 ‘언론’이란 두 글자에 심장이 뛰는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지금도 수많은 기자와 PD가 언론이란 두 글자에 끌려 땀을 흘려가며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광우병 오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PD수첩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고발 프로로 남아 있다. 언론에 인생을 묻으려는 후배들 앞에서 엄기영은 공리(公利)와 사리(私利)를 바꿔치기해 버렸다.



 대통령이 반대했다면 당이 엄기영을 영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천은 당에서 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대통령과 당은 자신들의 순정(純情)이 유린당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다. 스스로 정기(精氣)를 지키지 못하니 정권이 무시당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봉숭아 학당’이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이제는 대놓고 도덕적 레드 라인(red line·금지선)마저 넘고 있다. 지사 자리 하나에 정권의 가치를 팔아버리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신을 훼손하는 어느 유명한 지식인과 표 몇 장에 정신이 구제역에 걸려버린 집권당…그들이 추어대는 탈선의 탱고에 이 봄이 어지럽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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