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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자리는 레드오션 … 나 아니라도 할 사람 많다”





이창용 전 G20 기획단장,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변신



이창용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말 외교통상부 G20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했다. 기자가 “오늘은 혈색이 좋아 보인다”고 하자 그는 “이게 원래 내 얼굴”이라며 웃었다. 지난해 G20 준비기간에 그의 얼굴은 핏기 없이 허옇게 떠있을 때가 많았다. [김형수 기자]





“더 배우고 싶었다.”



 뜻밖이었다.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전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ADB로 떠나기 직전인 지난달 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왜 하필 그 자리로 떠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51세의 전직 차관급 관료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서울대에서 교수 생활까지 하면서 공부라면 실컷 해봤음 직한 그가 아직도 배움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G20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의 셰르파(협상 대리인)를 맡았던 그는 “국제 네트워크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G20 하면서 국제 네트워크를 많이 만들었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막후에서 협상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런 경험도 활용하고 싶었다.”



 앞으로 10년간은 아시아의 시대인데, 정작 한국에서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가 부족하다고 했다. “아시아 이슈는 이제 글로벌 이슈가 됐다. 아시아 바깥에서도 아시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수요가 생겼다. 우리 정부나 개인이 과연 아시아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G20 셰르파를 하면서 자신도 이런 점을 반성했다.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 고위층을 많이 알았다. 그 10분의 1만큼이라도 중국 고위층을 알았더라면 더 유능한 셰르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연초 개각을 앞두고 차관급 두 자리를 거친 그의 이름은 언론에 장관급 후보로 꾸준히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 그래도 장관 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은데.



 “국내에 능력 있는 분이 많다. 거기는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다. 나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나만의 블루오션을 찾고 싶었다.”









2010년 10월 청와대에서 스트로스칸(왼쪽) IMF 총재와 담소를 나누는 이창용(오른쪽) 전 G20 기획조정단장.





지난해 G20 의장국을 하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위상이 계속 유지될지 낙관하기 힘들다고 했다. 국력은 1인당 국민소득뿐만 아니라 인구 등 국가 사이즈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은 결국 해외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국제업무를 하는 공무원이 수십 년간 배울 내용을 1년간의 ‘초단기 속성과외’로 맛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게 다 한국이 의장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한국 외교에 쓴소리도 했다. “한국 외교는 이제까지 양자외교 중심이었다. 한국이 관심 있는 의제만 밖에다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G20은 다자외교였고, 글로벌 이슈를 다뤘다. 선진국이 되려면 공공의 이익을 얘기해야 한다. 앞으로 다자외교(중심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다자외교를 잘하려면 언어, 유연성, 전문지식이 꼭 필요하다.”



  공무원을 키우는 시스템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평균율이 지배하면 능력 있는 엘리트 공무원을 못 키운다”고 했다.



 그가 이달 초부터 일하기 시작한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자리는 연구 책임자면서 ADB 경제정책의 대변인 같은 역할을 한다. 비슷한 자리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로런스 서머스 전 미 국가경제위원회 의장과 함께 이 전 단장의 스승이기도 하다. 지난해 서울 G20정상회의 준비과정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화려한 하버드대 인맥을 자랑하는 이 전 단장의 역할론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에게 G20 뒷얘기를 다시 캐물었지만 답변이 영 시원찮았다. 그는 “위로는 사공일 G20위원장부터 아래로는 젊은 사무관까지 조직으로 함께 움직인 것뿐”이라며 더 이상 언급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인터뷰도 처음엔 “그냥 조용히 떠나고 싶다”며 고사했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한 뒤에는 “조그맣게 써달라”며 기자를 난감하게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글=서경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이창용 = 196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80학번으로 서울대 수석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현 정부 출범 직전 인수위를 거쳤고, 그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G20 기획조정단장을 역임했다. 덕수(德水) 이씨로 신사임당의 막내아들 옥산(玉山) 이우 선생의 학정공파 종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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