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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 팝업] 쉰 살 소년 함민복 시인, 장가가던 날 생긴 일

부부



주례 김훈씨 “신랑, 제주도 신혼여행 가며 난생 처음 비행기 타게 됐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시인이 10여 년 전 쓴 시다. 한 후배의 주례를 서 준 후 주례사를 시로 고친 것이다. 동고동락하는 부부의 애틋함이 살아있다. 늦장가를 가게 된 함씨가 앞으로 시에 나타난 부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가 김훈(오른쪽)씨가 ‘강화도 시인’ 함민복씨 부부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다. [손민호 기자]





“오늘 결혼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통, 고생, 가난, 외로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해 온 시인입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모른다는 거지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결혼식이 열렸다. 주례를 맡은 소설가 김훈씨가 신랑 함씨를 익살스럽게 소개하자 하객 사이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신부 박영숙씨의 어머니 염은순(90)씨에게 신랑·신부가 절하는 순서. 머리 숙여 한 차례 인사하는 것으로 모자랐던지 함씨가 장모에게 다시 한 번 큰 절을 넙죽 올리자 ‘와-’하는 웃음이 터졌다. 쉰 살 노총각, 1962년생 동갑내기 아내와 합친 나이가 100살이라는 시인 함민복의 결혼식은 이처럼 화기애애했다. 웃음과 환호 속에 새 출발하는 이들에 대한 축하의 마음이 생기는 결혼식이었다.



 주례 김씨는 유머러스한 주례사로 이날 예식을 흥겹게 만들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자전거 레이서 겸 알피니스트 중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는 분’이라고 소개 받자마자 거침 없이 주례사를 시작했다. 오래 신문기자 생활을 해 ‘팩트’에 단련된 그는 신부 박씨가 5남5녀의 막내딸로 조카만 20명이라는 점 등 시시콜콜 ‘사실 관계’를 밝혔다.



 그게 웃음을 자아냈다. 함씨가 국내선 비행기도 탄 적이 없어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가며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다는 점, 신부의 어머니 염씨가 충청북도로부터 몇 해 전 받은 ‘훌륭한 어머니 상’을 이날 가져오시라고 했더니 찾지 못해 못 가져온 사실 등도 소개했다.



 압권은 함씨의 경제적 무능력을 밝힌 대목. 김씨는 얼마 전 함씨가 운영하는 강화도 인삼가게를 찾았다. 실적을 물어보니 6개월 간 두 차례, 3만원 정도의 매상을 올렸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김씨는 이 사연을 소개하며 “결혼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일이다. 앞으로 개선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다”고 했다.



 축가를 부른 가수 안치환씨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가사를 ‘민복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꿔 불러 흥을 돋웠다. 이정록 시인의 축시 낭송이 이어졌다.



 이날 결혼식에는 줄잡아 300∼400명의 하객이 몰렸다. 시인 결혼식 치고는 대성황이라는 게 식장을 찾은 시인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토록 문단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은 함씨의 됨됨이, 생활 방식, 시 세계 등으로 미뤄 그가 가정을 이루고 윤기 있는 삶을 영위하리라는 데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강화도로 훌쩍 건너간 함씨는 누구보다 어렵게, 그러나 끈질기게 시 쓰기에 매달려왔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한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을 떼어 내 출판사로 보내 받은 몇 만 원으로 버텼다는 등 타협을 거부하고 오롯이 시에 매진한 그의 일화는 끝이 없다. 이날 축하는 그런 시 정신에 대한 축하에 다름 아니다.



 시인 손택수씨는 “함민복씨는 천상병 이후 시인 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 기인이면서 가난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저 아름다운 영혼을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진명 시인은 “오늘 결혼식이 왁자지껄한 공동체적인 삶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 같다 ”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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