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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은밀한 애인

내 은밀한 애인은 말투가 최화정이 흉내 내는 로라의 그것과 비슷하다. 느끼하고 들뜬 톤에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말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여기가 당신 집이군요. 먼저 책장부터 보고 싶어요. 역시 당신도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음, 존 파울즈, 보르헤스, 요네하라 마리, 수전 손택, 발터 벤야민. 오, 이렇게 취향이 똑같다니. 우린 소울메이트인가 봐요.

서점에 들어서는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이 날 좋아할 줄 알았어요. 우린 말이 통할 것 같았죠. 적어도 당신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그런 철부지는 아니잖아요. 내 진가를 알아볼 줄 알았죠. 정말이에요. 당신이라면 내 마음을 열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사랑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이죠. 아까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까 무심한 척했을 뿐이에요.

커피, 좋죠. 과테말라 안티구아인가요. 향기가 좋네요. 하지만 전 커피는 못 마셔요. 마시면 몸이 부풀어오르는 것 같아서요. 이 조명 정말 맘에 드네요. 꼭 당신처럼 말이죠. 난 너무 밝은 건 싫어요. 눈이 부시잖아요. 어두운 건 더 싫어요. 당신 얼굴을, 표정을, 무엇보다 당신 눈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그런 뜨거운 눈으로 쳐다보는 건 좀 부끄러워요. 아무리 이곳에 당신과 나 둘뿐이라 해도.

이것이 당신의 의자군요. 나는 당신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매력적이에요. 달려가 무릎에 안기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마치 나를 다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듯한 그런 진지함, 귀여워요. 지금 그 표정 정말 매력적이네요. 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그 표정과 동작 말이죠. 그러다 잠시 눈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길도 마음에 들어요. 마치 제 마음의 행간을 읽는 것 같아서요.

당신처럼 감성적인 사람이 좋아요. 이 음악은 슈베르트군요. 나도 ‘겨울나그네’를 좋아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어울리지 않아요.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에겐 말이죠. 이제 내 몸도 따뜻해졌어요. 당신도 더워졌군요. 여기는 침실이네요. 이제 사랑을 나눠도 좋아요. 그래도 단숨에 그러진 마세요. 시간이 많잖아요. 잠시 나를, 내 몸을, 내 손길을, 내가 내는 소리를, 내 몸의 냄새를 느끼고 받아들이고 당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요. 당신은 저의 이 부분을 사랑하는 군요. 아, 간지러워요.

당신 손길은 부드럽고 섬세하군요. 이렇게 당신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요. 어머, 제 냄새를 맡는군요. 좋은 냄새가 나나요? 입을 맞춰도 좋아요. 머뭇거리는군요. 머뭇거리는 그런 감수성이 내 마음을 흔들었어요. 사랑을 나눈 후에도 당신은 바로 일어서지 않겠죠. 사랑을 나누자마자 샤워하러 가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얄미운 건 없어요. 아직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어도 좋잖아요.

여운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래요.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우리가 나눈 사랑을 더듬어 보세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슬픔을, 그 그윽하고 내밀한 속삭임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누가 들어오네요. 저 여자는 당신의 아내인가요? 왜 입을 막고 이래요. 아앗.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얼른 내 은밀한 애인을 덮어 책장 속에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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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