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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위치 따라 천변만화, 서로 다른 세상 겹쳐 놓은 듯

1 통가리로 국립공원 인근 마오리족 건축물에 장식된 조각상. 전설적인 추장이나 숭배했던 신을 조각해 놓았다.
신들이 보낸 전설 속 불화산
마오리족 사이에는 불에 관한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다. 먼 옛날 폴리네시아에 거주하던 마오리족이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로 이주하게 되었다. 뉴질랜드 북섬에 안착한 마오리족 가운데는 당대 최고의 직관력을 지닌 통가 응가토로이 랑기라는 신관이 있었다. 북섬 동쪽 플렌티만에 상륙한 신관 일행은 타우포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산 정상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발견했다.

신관은 불꽃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일행을 호수에서 남겨둔 채 하인 아우루호에만 데리고 정상으로 향했다. 타우포 호수에 남아 있던 마오리족은 신관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가 돌아올 때까지 단식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배를 채웠다. 이를 지켜본 땅의 신이 벌로 눈보라를 일으켜 모두 얼음기둥으로 만들어 버렸다. 호수로 돌아온 통가 응가토로이 랑기는 얼음기둥으로 변한 마오리족을 발견하고 얼음기둥을 녹일 수 있는 불을 달라고 고국 폴리네시아에 있는 신에게 요청했다. 신관이 요청한 불은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땅을 통해 전달됐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구성하고 있는 3개의 거대한 활화산 통가리로, 응가우루호에, 루아페후 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전설은 전하고 있다.

2 뉴질랜드 북섬 중앙에 자리한 3개의 활화산으로 이루어진 통가리로 국립공원 전경.
지상에서 가장 두꺼운 화산재 퇴적층
면적이 800㎢에 달하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통가리로, 루아페후, 응가우루호에 산과 주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곳의 거대한 봉우리 중 먼저 화산활동을 시작한 곳은 통가리로 산(1968m)과 응가우루호에 산(2291m)이었다. 약 200만 년 전 빙하기 때 활동을 시작한 통가리로와 응가우루호에 산에는 수십 곳에 달하는 크고 작은 화구 언덕이 형성돼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발생한 화산은 이 지역을 복합적인 화산지역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지금도 땅속에서는 지속적인 화산활동이 진행 중이다.

3 통가리로 산 분화구 지역에 조성된 에메랄드 호수.4 통가리로 국립공원 북쪽 외곽지역에서 한적하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5 정글이 연상될 정도로 울창한 숲이 조성돼 있는 서쪽 저지대.6 통가리로 국립공원 지역에 거주하는 마오리족 주민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국립공원 중앙에는 북섬에서 가장 높은 루아페후 산(2797m)이 있다. 응가우루호에와 통가리로 산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루아페후 산은 지금으로부터 120만 년 전에 활동을 시작한 활화산이다. 마오리 언어로 ‘불을 뿜고 있는 화구’라는 의미를 간직한 루아페후 화산은 지금도 수시로 화산재를 뿜어내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화산재 분출 때문에 통가리로 국립공원 지역의 지반은 두꺼운 화산재로 덮여 있다. 이 일대에 형성된 화산재 퇴적층은 지상에서 가장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 깊숙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마찰로 인해 뉴질랜드 위치는 매년 5㎜씩 움직이고 있다.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극단적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계절은 말할 것도 없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서로 다른 세상을 교묘하게 결합해 놓은 듯하다. 통가리로, 루아페후, 응가우루호에 산 정상과 고지대는 온통 용암바위와 화산이 만들어낸 화산재 퇴적층뿐이다. 사방이 온통 용암층과 화산재 퇴적층으로 덮인 정상 부근에서 접할 수 있는 식물은 없다. 대신 척박하기 그지없는 정상과 인접한 고산지대에는 화산이 만들어낸 다양한 색상을 지닌 호수를 만날 수 있다. 현재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조성돼 있는 호수는 어퍼타마, 로어타마, 루아페후 등 12개에 이른다. 저마다 크기와 색상이 다른 호수 가운데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통가리로 산에 있는 에메랄드 호수를 빼놓을 수 없다. 정상 바로 아래에 조성된 호수의 지명은 에메랄드의 초록빛에서 유래했으며, 색상도 아름답지만 주변에 형성된 거대한 분화구와 능선과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하다.

달 표면을 연상시키는 해발 1600~1900m 지점에서도 식물이나 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하나 능선을 따라 조금 더 내려와 1300m 지점에 이르면 키가 작은 겉씨식물 구과목에 속하는 나한송과 광엽저목을 하나 둘씩 만날 수 있다. 고산지역에서 접할 수 있는 수목은 그 숫자도 적고 크기도 작다. 한편 새롭게 형성된 지역에서는 드물지만 용암퇴적층을 뚫고 나온 균류, 지의류, 이끼류를 볼 수 있다.

열대우림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산림군
단순하고 황량한 정상지대를 벗어나 중간지대에 다다르면 전혀 다른 풍광이 시선에 들어온다. 국립공원의 풍광과 생태계는 동서남북이 전혀 다르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동쪽은 강수량이 적어 남반구 고산대 식물인 키 작은 나무들뿐이다. 반면 강수량이 풍부한 서쪽 지역은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잘 보여준다. 열대 정글을 연상시키는 서쪽 지역에는 이끼류부터 키 작은 수목, 고대 나한송, 남반구 상록수, 은색 너도밤나무, 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린 수십 미터에 달하는 리무 나무까지 나무와 식물로 가득하다.

남쪽 역시 비가 많이 온다. 풍부한 강수량은 주변을 원시림에 가깝게 만들어 놓았으며 울창한 산림지대는 희귀 조류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갈색제비갈매기, 노란관앵무새, 유럽울새, 노란개똥지빠귀 등 십여 종이 넘는 희귀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희귀 조류와의 조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적당한 강우량을 유지하는 북쪽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에 의해 일찍이 고원목장지대로 활용되고 있다.

추장들이 잠든 마오리족 영혼의 고향
1000년 전 이주해 온 마오리족은 1840년 영국과 와이탕기 조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800년 동안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았다. 와이탕기 조약이 체결되면서 유럽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은 두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마오리족을 소수민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현재 뉴질랜드 각지에 흩어져 거주하는 마오리족의 후손은 인구 중 약 8%에 해당하는 30여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절대 다수가 북섬에 거주하는데 그 중심이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인근 타우포, 로토루아 등이다.
마오리족에게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그들에게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영혼의 고향이자 성지다. 마오리족이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이곳에 과거 마오리족을 통치하던 추장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마오리족이라면 누구나 초대 추장부터 3대 추장까지의 시신이 국립공원에 묻혀 있다고 믿고 있다.

마오리족은 나무를 다루는 재능이 뛰어나다. 거친 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폭이 좁고 긴 카누를 제작하는 기술을 필두로 과거 마오리들이 머물렀던 삶의 터전에는 어김없이 독특한 조각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은 어렵지 않게 마오리족의 집 앞을 장식해 놓은 개성이 돋보이는 조각과 멋진 장식을 만날 수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코를 맞대고 인사를 나누는 마오리족. 1769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이 이 땅을 찾지 못했다면 그들은 웅장한 자연을 배경 삼아 하카란 그들만의 전쟁 춤을 즐기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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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