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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맛을 느끼니 몸은 깨달음을 얻네

우리의 사찰요리를 일본에서는 쇼진요리(精進料理)라고 한다. 쇼진(精進), 즉 정진이란 ‘나쁜 마음, 악행을 누르고 선행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끝까지 밝혀내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 속에서 음식 역시 정진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됐다. 종교활동에 방해가 되는 몸과 마음의 번뇌를 없애기 위해 미식을 금하고 조식(粗食: 곡식, 채소, 해조류 등)을 권장했다. 사람들은 이후 불교요리를 총칭해 쇼진요리라 불렀다. 이 종교적 색채가 농후한 요리에 어울리는 적당한 장소에 왔다. 에히메(愛媛)현이 위치한 시코쿠(四國)는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 고보대사(弘法大師)의 발걸음이 순례자의 길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소박,간결,정갈… 자연의 것을 자연 그대로 섭취
시코쿠 순례자의 길은 약 1200년 전 고보대사가 수행한 길을 따라 4개 현에 산재한 88개 사찰을 도는 순례 코스다. 총연장 1400㎞로 도보로만 대략 두 달이 소요되는 고통과 인내의 길이기도 하다.88개 사찰 중 58번째 사찰인 센유지(仙遊寺)로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쇼진요리를 제대로 맛보려면 정진의 느낌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허영만 화백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체험이었다. 깊은 속내를 알아챈 겐쇼(小山田憲正) 주지스님이 동행을 자청했다. 비록 두 시간의 짧은 순례였지만 타종과 함께 합장으로 순례의 끝을 마무리한 허 화백이 이내 배를 어루만졌다. 그 익살스러운 시늉에 주지스님은 “순례자의 배고픔을 외면할 수 없다”며 공양 자리로 안내했다.

센유지는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절로 주지스님의 부인(일본의 스님은 결혼이 가능하다)이 차리는 정갈한 쇼진요리가 순례자들 사이에 꽤나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경내 식당에 마련된 요리는 빨간색 쟁반과 식기의 강렬한 색과 대비돼 더욱 소박하고 간결하며 정갈해 보였다. 그릇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게 담긴 음식을 보고 허 화백이 “음식을 만들고 담는 것도 정진의 한 과정 같다”며 세심한 손길과 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주지스님이 들려준 쇼진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의 사찰요리와 마찬가지로 채식에 근간을 두고 있다. 튀기고 조리고 삶고 구운 요리들이 구색에 맞게 준비됐다. 재료는 호박·당근·고구마(잎)·가지·고사리·토란·무·순무·동과·한천·매실 등이다. 제철 재료 위주다.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간은 최소화한다. 재료는 버리는 일이 없도록 잎, 줄기, 껍질 등은 모두 사용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통하고 있다. 육수를 우려낸 다시마를 잘게 썰어 고명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 다양한 두부요리를 들 수 있다. 당일 센유지에서는 네 가지의 두부요리가 나왔다. 허 화백의 극찬을 받은 고야(高野)두부는 스님들의 비상식량 개념으로 탄생했다. 얼린 두부로 불리기도 하는데 현재는 진미 대접을 받는 고급두부이기도 하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곡물과 채식 위주에 따른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두부뿐 아니라 된장·간장·두유·유바(湯葉)·유부·낫토 등의 가공요리가 발전했다. 여기서 얻은 대두 기름도 소중히 사용했다고 한다. 쇼진요리는 대두요리의 보고인 것이다.

그릇 사이를 오가며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던 일행이 “양념이 배제돼 자연의 순수한 맛이 풍요롭게 다가온다”며 평가하자 주지스님이 “혀로 느끼는 맛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먹는 것이므로 감사의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미식의 유혹을 경계한다. 식객 취재로 이미 불교요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허 화백이 “성불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어서 오랜만에 순한 마음을 담는 느낌”이라는 감상을 남겼다. 통역을 들은 주지스님이 말없이 허 화백을 향해 합장을 한다. 경내에는 오후를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요리의 보물창고, 서민 음식에도 영향
쇼진요리는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12~14세기)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전래된 선종의 영향으로 탄생했다. 교리와 더불어 양국의 불교음식을 일본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당시 선종의 세력 확장과 더불어 일반 서민들의 음식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삶는 조리법과 기름의 사용이었다. 이전까지 주를 이루었던 생식 또는 말리거나 굽는 단조로운 조리법의 한계를 벗어나 다채로운 요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엄격한 교리에 따른 조리법, 상차림, 식사법은 혼젠(本膳)과 가이세키(懷石)요리 등의 근간을 이루며 근대 일본 요리문화가 만개할 수 있는 자양분 역할을 담당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대 쇼진요리는 대중에게 고급요리로 인식되는 과정에서 어패류와 향신료를 사용하는 등 조리법에 변형이 이뤄지고 있어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선종의 교리를 엄격하게 따르는 사찰 위주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성인병 예방 등 건강식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본 기획은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클레어(Clair)와 한진관광의 후원으로 2년간 일본 각지를 방문해 다양한 요리 그리고 자연을 체험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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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