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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respondence(1995)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새로운 시도될 것”
-6월 24일부터 9월 28일까지 열리는 뉴욕 구겐하임 전관 전시가 화제입니다. 언제부터 준비하셨나요.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제의를 받았는데 여러 사정으로 좀 늦어졌습니다. 개관 이래 개인전으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어째서 그렇죠.
“내 작품은 공간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구겐하임의 메인 전시장은 나선형으로 경사진 복도를 따라 빙빙 돌아가며 쇼핑몰 윈도처럼 돼 있습니다. 그래서 메인 전시장보다 그냥 화이트 큐브 형태의 별실을 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새로 취임한 리처드 암스트롱 관장이 메인 전시장에서도 하고 별실에서도 하라고 하더군요.”

2 Relatum-Silence(2009) 3 Relatum Dialogue(2009)
-새로운 공간에 대한 도전의식이 생겼겠습니다.
“수차례 점검해보니 돌아가다 보면 멀리 반대편에서도 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가 될 것 같았습니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색다른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죠.”

-옛날 파리 어느 전시장에서도 가운데 기둥 때문에 고민했다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기둥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일하는 사람이 눈치를 채고 ‘기둥은 피하지 못해’라고 하더군요. 내 짧은 불어로도 그 말을 알아들었어요. ‘그래 맞다. 그럼 기둥도 살리고 작품도 살리는 방법을 찾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그 전시는 오히려 더 잘됐습니다.”

-90여 점의 작품은 어떻게 골랐나요.
“수석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와 대여섯 번 논의했는데, 대부분 그가 골랐습니다. 아시아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고,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죠. 미국에서 미술관 전시는 처음인데 유럽과는 많이 달랐어요. 유럽은 작가 중심이라 큐레이터하고만 얘기하면 되는데 미국은 미술관 중심이더라고요. 미술관이 중심이 돼 꾸민다는 발상이 강해요.”

"최소한의 회화 요소로 승부한다”
-그림의 경우 어떤 방법으로 그립니까.
“미리 주문한 캔버스와 붓, 물감, 돌가루 등을 이용합니다. ‘대화’ 시리즈의 경우 캔버스를 눕혀놓고 붓으로 4~5번 칠하죠. 한번 칠하면 마르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리니까, 작품 하나가 나오는 데 40일쯤 걸립니다. 붓질은 보통 숨을 멈춘 상태에서 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쉬는 시간이고 내쉴 때가 일하는 시간이죠. 호흡이 일그러지면 에너지와 리듬이 깨집니다.”

-일필휘지 스타일인가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붓질을 단번에 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싫어졌어요. 여러 번 칠하게 되면서 오히려 색은 엷어졌지요. 회색이나 검정 모노크롬 스타일인데 이것은 자연에 있는 색이 아닙니다. 그만큼 추상성이 높고 현실과 거리가 있게 됐다는 뜻이죠.”

-‘점’ 시리즈에서 점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점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72, 73년 무렵이었어요. 흐트러짐 없는 점의 화면 구성이 80년대 들어서면서 흔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여백이 보였어요. 90년대 이후 화면이 다듬어지면서 ‘대화’ 시리즈에서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점을 그리고 있습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음과 양 등 중요한 모든 것은 두 개죠. 점이 줄어들수록 위치나 공간감은 더욱 중요시됩니다. 이제 다시 ‘그림이 뭔가’라는 출발점에 섰다고 할까요. 그 최소한의 요소 덕분에 외국에서 통할 수 있었고, 그것을 더 철저하게 할 뿐입니다.”

여기서 잠시 그가 전하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들어보자. “…언뜻 보아서는 종잡을 수가 없어 장난질로 치부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 그림이야말로 일종의 절대적인 질서감 없이는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치달은 통찰이나 결정적인 논리의 산물이라 해도 좋다. 캔버스의 어딘가에 확연히 한 획을 내리찍으면 그로써 단연 화면이 생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은 또 앞의 한 획에 호응이라도 하듯 있어야 할 자리에 저절로 한 획을 낳는다.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정신의 광휘와도 같은, 물질의 에센스 같은 온갖 표정을 띠면서 그야말로 그림으로밖에 나타낼 수 없는 세계의, 뭐라 형언하기 힘든 도상(圖像)이 이루어져 간다.”(『시간의 여울』(2009) 중 198쪽)

-점을 어디에 찍을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캔버스 어디에 찍을 것인지 노트에 미리 좌표를 잡아보지요. 느낌이 있는 곳에서 구도가 나옵니다. 하지만 막상 그리려면 달라질 때도 있죠. 눈이란 것은 자기 중심으로 보려 합니다. 칸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저 나무가 보이는 그대로인가, 내가 보고 싶은 것인가’. 그냥 보이는 것은 없어요. 보이는 것은 내 생각을 조립한 것이죠. 말도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않잖아요. 생각해서 꾸며내는 것이지.”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나요?
“별로 받지 않아요. 인정하기도 싫고. 기본적으로는 지식의 문제입니다. 쌓아올린 콘텍스트가 얼마나 있느냐의 문제죠. 갑자기 나오는 직관은 신뢰하지 않아요. 많이 훈련하다 보면 그렇게 작동할 수도 있겠지. 부정은 하지 않지만 믿진 않아요.”

-작업은 얼마나 자주 하시나요.
“매일 합니다. 손이 굳으면 안 돼요. 손은 외부와의 가장 중요한 접촉점이자 세계를 알려주는 척도거든요. 신체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가장 예민한 접촉 부분이 손이고 눈입니다. 그래서 항상 훈련시켜 놓아야 합니다. 물감을 개거나 글씨를 쓰거나 하는 식으로라도. 눈도 마찬가지죠. 의식적으로 사물의 구도와 질서를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물을 뚫고 깊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나의 일, 나의 삶
-지난해 여름 개관한 나오시마의 이우환 미술관 탐방이 미술계의 유행입니다.
“사실 나오시마는 가기 힘든 곳입니다. 교통편이 복잡하지요. 그런데도 지난해 문을 연 이래 최대 하루 1700명까지 오고 있어요. 하루 300명까지는 괜찮지만(사실 100명 이하가 좋지요) 너무 많이 오다 보니 과연 내 작품을 제대로 관람하고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공간의 여백미를 제대로 느낄른지.처음 미술관 얘기가 나왔을 때 사실 건축도 해보고 싶었죠. 내가 처음 기획안을 짜서 내 친구 안도 다다오에게 주었더니 이 친구가 아주 근사하게 설계를 했더라고요. 저는 군말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대구에도 이우환 미술관 건립 움직임이 있던데요. 195억원을 들여 2012년 착공해 2014년 개관할 예정입니다.
“김범일 시장이 대구 문화를 국제화해야 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가 나오시마로 찾아오기도 하고 해서 일단 진행하기로 했지요. 단순히 내 미술관이 아니라 내 친구들 작품을 받아 함께 전시하면 색다른 미술관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 이름도 ‘이우환과 친구들’입니다.”

-혈기왕성하신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많이 돌아다닙니다. 맛있는 것을 즐기죠. 친구들과 차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니쉬 카푸어, 로만 오팔카, 토마스 스트루트, 안도 다다오 등은 좋은 친구들이죠. 전시회 엽서를 주고받으며 근황을 챙깁니다. 만나는 장소는 주로 공항이에요. 산에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 있는 것처럼 그 넓은 공항에도 예술가들이 다니는 길이 있는 것 같아요. 백남준도 공항에서 제일 많이 만났어요.”

-한식을 즐기신다던데.
“꼭 고급이 아니어도 맛있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분통 터지는 일은 한국에 자랑할 수 있는 한국 음식점이 없어요. 대표적인 호텔에도 한식당이 없습니다. 요리가 없는 나라에 무슨 문화가 있습니까? 맛있는 집이라는 곳도 가보면 요리가 없어요. 그냥 음식일 뿐입니다.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한 유명한 요리 선생님께 물었어요. ‘선생님의 김치는 어떤 것입니까’ ‘아유 다 똑같지, 뭐’ ‘아뇨, 선생님만의 김치는 어떤 것이냐고요’ ‘그냥 요리법에 다 있잖아요’하더라고요. 그는 제 말의 의도를 몰랐어요. 우리나라 요리의 문제는 요리사가, 자기가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발전을 하는 것이거든요. 아직 요구가 높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죠. 요리하는 사람만 뭐라 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말이 있다면.
“큰 점이라도 점은 점입니다. 점 찍고 선 긋는 것은 서너 살 때부터 해왔어요. 배운 게 그것입니다. 제게 한학을 가르쳐준 동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삼라만상은 점에서 시작해 점에서 끝난다’. 그때 들은 얘기를 지금껏 구워먹고 삶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손재주나 살짝 떠오른 아이디어 정도로는 안 됩니다. 세계에서 싸울 수 없어요. 어떻게 지탱하고 발전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추사나 겸재도 사실은 대단한 이론가들이었습니다. 손재주만 갖고 크게 된 작가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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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