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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막말하는 한국 정치, 링컨을 배워라”





‘킹스 스피치(King’s Speech)’라는 영화가 최근 아카데미 최고작품상을 받았다.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부친인 조지6세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에서 조지6세는 말더듬이 증세를 극복하고, 힘 있는 라디오 연설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한다. 간결하고 힘 있는 정치 지도자의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렸다. 이런 연설은 위기일수록 더욱 빛을 발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로 모으는 힘을 발휘했다. 신문과 월간지에 글을 쓰고 있는 영어칼럼니스트 이윤재(62)씨는 최근 유명인사들의 연설문과 어록을 담아 『대통령의 영어』라는 책을 냈다. 그에게서 위대한 연설이란 어떤 것이었는지를 들어봤다.

글=성시윤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이른바 ‘막말정치’의 우려가 많습니다.

 “애초에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그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즘 한국 정치 현장에서 왔다갔다 하는 말들이 너무 ‘막말’이에요.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아, 정치가라 하지 맙시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좀 더 품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링컨·케네디·트루먼 전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마틴 루서 킹 목사,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등의 연설과 발언을 수집해 왔다.





●미국의 정치인들도 말싸움을 할 일이 있었을 텐데요.

 “링컨을 예로 들어볼게요. 링컨이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가 링컨을 ‘이중인격자(two-faced man)’라고 몰아붙여요. 그러니까 링컨이 받아넘깁니다.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다. 내게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면, 제가 이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겠느냐’고요. 링컨이 광대뼈가 나오고 수염이 텁수룩하니까 정적들이 그의 외모를 많이 놀렸거든요. 정적 중 한 명이었던 스탠턴은 그를 ‘고릴라’에게 빗대기도 했어요. 그런데 링컨은 그를 전쟁 장관으로 기용했어요. 나중에 링컨이 저격당하자 스탠턴이 이렇게 말했죠.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가장 완벽한 통치자가 여기 누워 있다. 이제 그는 한 시대의 인물이 아니다’라고요.”

●결국 정적을 감화시킨 것이군요. 명언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식과 배경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그 연설이 나왔는가 하는 것이에요. 대체로 보면 위기에 처했을 때 명연설이 많이 나와요. 미국 CIA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그만 사건을 일으켰다 실패하죠. 케네디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승리는 100명의 아버지가 있지만 패배는 고아다. 내가 정부 책임자다’. 우리 말에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이라고 하는데, 케네디는 ‘모두 내 탓’이라고 인정한 것이죠. ‘네 탓’이라는 말은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내 탓’이라는 말은 상대를 자극하지 않죠.”

●대통령이라고 항상 진실만을 말하긴 어려울 텐데요.

 “처칠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장가였어요. 처칠이 2차대전 중에 ‘전시에는 진실이 정말로 소중하기 때문에 가끔씩 거짓말이라는 경호원을 대동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어요. 국민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진실에 대한 사명감이 담겨 있죠.”

●정치인들이 그때그때의 여론에 부합하는 말을 하고 싶은 유혹도 받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은 항상 경계했어요. 2차대전을 종식시킨 트루먼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어요. ‘모세가 이집트에서 여론조사를 했더라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었을까’. 여론이란 파도와 같이 출렁거리는 속성이 있는 것 아닌가요.”

●미국 대통령의 영어 얘기를 하자니, 한국 대통령의 영어도 궁금해지는데요.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이 영어를 잘한 분으로 알려져 있죠. 특히 이승만 대통령은 영어 실력이 대단했어요. 국무회의에서도 가끔 영어로 명언을 하셨더군요. 이승만 대통령의 명언 중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 있죠? 그 말도 원래는 영어 명언(United we live, divided we die)이에요.”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말이 아니었군요.

 “이 대통령 머릿속에 영어 명언이 녹아들어 있던 것이죠. 그것을 한국어화한 거예요. 명언을 많이 만들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돼요. 그 지식들이 녹아 있다가 적절한 상황에서 살아나는 것이죠. 케네디나 킹 목사, 링컨 모두 다른 위인의 말을 표절했어요. 나쁘게 말하니 표절이고, 정확히 말하면 영향을 받은 것이죠.”

●그런데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떻게 영어 공부를 했죠?

 “다소 차이는 있지만, 두 분의 공통점이 감옥에서 영어의 기초를 닦았다는 거예요. 그분들에게 흔히 말하는 동영상 자료가 있었습니까? 그저 책으로 공부하셨죠. 이 점에서 요즘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죠.”

●그게 무엇이죠?

 “흔히 ‘영어 문법은 폐기처분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어의 기본은 문법입니다. 그럼 문법은 뭐냐, 그리스어 어원을 따져보면 ‘글을 쓰는 기법(art to write)’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문법 문제가 왜 논쟁이 되느냐 하면, 문법에 맞도록 글쓰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문법만 가르쳐왔기 때문이에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영어교육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영어』 표지에는 저자가 ‘이윤재·이종준’으로 적혀 있다. 이종준(23)은 이윤재씨 아들이다. 종준씨는 젊은이의 감각에서 이윤재씨의 책을 ‘감수’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대 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다.

●아드님은 어떻게 영어를 공부했습니까?

 “우리 아들이 만 다섯 살에 국어를 읽었어요.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간판이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스스로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영어에 노출시켰죠. 영어 테이프 녹음기를 걔 손에 들려줬어요. 그랬더니 앞으로 돌렸다 뒤로 돌렸다 하면서 피아노 치듯 갖고 놀아요. 6, 7년을 문법이란 건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 듣고, 말하고, 받아쓰고 그것만 한 거예요. 문법은 중학생 때부터 가르쳤죠.”

●이른바 ‘조기교육’이군요.

 “제 학창시절에는 대입 시험에 한문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어요. 그래서 사자성어를 많이 외우고 그랬죠. 그런데 그렇게 한자에 매달려도 우리 아버지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분은 예닐곱 살 때부터 서당에 다녔지 않습니까. 그래서 배우는 시점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죠. 물론 한글을 다 읽고 쓰게 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죠.”

 이윤재씨는 1974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중대, 숙대, 한양대, 동국대에서 영어 특강을 했다. 그러다 78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왜 직업을 바꾸셨나요.

 “지속성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이었죠. 입사하자마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어요. 우리가 맡은 공사를 감리하는 영국인 기술자를 상대하는 일을 맡았어요. 처음엔 저도 전화벨이 울리면 우왕좌왕했어요. 제가 만든 회의록을 보고는 우리랑 일하는 외국인 원어민이 포복절도하기도 했죠. 그때의 몇 년이 제게 상당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82년 귀국한 이윤재씨는 영어 공부에 갈증을 느끼고,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집안 형님의 부탁으로 돌연 여의도에 남게 됐다. ‘형님’은 이중재 전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85~88년 12대 국회 내내 이 의원의 비서·보좌관을 했다.

 이윤재씨는 91년 영어강사로 돌아왔다. 그러다 2002년 이후 일간지 등에 영어 칼럼을 내기 시작했고, 2007년 이후로는 이런저런 영어학습서를 내고 있다.

●저서에 인용하는 연설문이나 자료는 어떻게 구하나요?

 “제가 신문 덕을 많이 봅니다. 제가 신문을 10개 봐요. 일단 기초적 지식은 거기서 얻어요. 그런데 제가 필요한 건 한글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원문을 역추적해요. 시사성 있는 정보를 얻는 데 신문만 한 게 없어요.”

●책에서 정치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메릴린 먼로를 소개하셨는데요.

 “다른 인물보다 메릴린 먼로를 쓸 때 제일 힘이 들었어요. 백치미로 유명한데 그게 아니고 천재더라고요. 그녀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구구절절 이 사람이 이런 얘길 했나 싶을 정도로요. 한마디 한마디가 시어처럼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백치미를 풍긴 것도 연기였던 것이죠.”


j 칵테일 >>

다시 보게 되는 먼로의 말말말






“메릴린 먼로는 ‘군중 속의 고독한 배우’였어요.”

 이윤재씨는 『대통령의 영어』에서 메릴린 먼로의 어록을 23쪽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대통령도 정치인도 아니었던 먼로를 왜? 그런데 읽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섹스는 자연의 일부다. 나는 자연에 순응한다.”

 “육체는 온통 감싸라고 있는 게 아니라, 보여주라고 있는 것이다.”

 먼로의 발언은 짧지만, 도발적이다. ‘섹스 심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매력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먼로의 다른 어록은 그녀의 진면목을 발견케 해준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 쳐다본다. 내가 마치 사람이 아니라 거울인 것처럼. 그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본 것이다. 그러고는 나더러 음란하다고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은 순결한 척한다.”

 “모든 사람은 스타다. 누구나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먼로는 “나의 얼굴이 소멸하고 나의 육체가 소멸하면 나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먼로는 1962년, 그녀 나이 서른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배우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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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