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j Special] 대니 홍, 15세 한인 쿼터백에 미국이 놀랐다

‘풋볼’은 가장 미국적 스포츠다. 덩치들의 과격한 전투가 필수다. 체형이 불리한 아시안계 선수는 버티기 힘들다. 그런데 이변(異變)이 생겼다. 미국의 ‘주니어 국가대표 쿼터백’을 한인 소년이 꿰찼다. 소년의 이름은 대니 홍(15)이다.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의 리버티 중학교 패트리어츠 소속이다. ‘즐기다 보니 최고가 됐다’는 당돌한 아이. “처음엔 모두 내 피부를 무시했지만 나중엔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소년은 안주하지 않는다. 내 꿈은 ‘변호사’라고 거침없이 밝힌다. 미국 스포츠계의 돌풍인 그를 j가 단독으로 만났다.

글=LA중앙일보 원용석 기자

‘아시안계 최초가 탄생했다.’ 지난 1월 대니 홍에게 이런 감탄이 쏟아졌다. 미국의 주니어 국가대표팀 쿼터백으로 선발된 뒤였다. 대니는 1996년 12월 25일생이다. 변호사 홍요셉(40·미국명 조셉)씨와 이연경(40)씨의 2남 중 장남이다. 아직 어리다. 그러나 ‘몸’은 어리지 않다. 벌써 키 1m90㎝, 몸무게 80㎏이다. 프로 풋볼(NFL) 선수를 방불케 한다.







●풋볼을 시작한 동기는.

 “친구 따라 재미로 시작했어요. 우연히 코치 눈에 띄게 됐죠. ‘플레이 북’(경기 작전이 적힌 책)에 수록된 수십 개 전술을 한번 해 보곤 바로 익혔죠. 감독님이 그 자리에서 풋볼 팀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하하.”

 라이오넬 나쿠아 감독은 “원래 내 아들이 주전 쿼터백이었다. 하지만 대니를 데려온 뒤 아들을 백업으로 돌렸다”며 웃었다. 그는 대니가 ‘생각하는 쿼터백’이며 “수비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대니가 현역 최고의 NFL 스타인 톰 브레이디와 페이튼 매닝처럼 될 수 있다고 비유했다. “팔 힘이 좋고 똑똑하다. 불타는 경쟁심까지 지녔다. 실력을 계속 다듬으면 NFL 최초의 아시안 쿼터백이 될 것이다.”

●아시안으로 시기를 받은 적은.

 “처음에는 그런 게 적잖게 있었죠. 그러나 곧 저를 많이 응원해줬어요. 피부색보단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초창기엔 한국인이란 자의식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담감을 떨쳐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자나깨나 공부만 하는 ‘너드(nerd: 따분한 아이)’ 집단이라는 편견을 어느 정도 깼다는 것도 뿌듯하고요.”

 풋볼 선수 대다수는 흑인이다. 그러나 머리를 많이 쓰는 쿼터백만큼은 백인의 철옹성이었다. 대니를 향한 학부모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압도적 기량엔 모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시기는 박수로 바뀌었다.

 지난 시즌에 그는 92개의 패스를 던져 74개를 성공시켰다. 터치다운은 19개를 터뜨렸다. 러싱 터치다운(달려서 상대 골라인을 넘는 것)을 2개나 뽑아낼 정도로 기동력도 좋다. 팔 힘이 좋아 공을 멀리, 정교하게 던지는 그는 가로채기도 1개만 허용했다. 리버티 주니어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7승3패로 시즌을 마쳤다.

●풋볼 시작 2년 만에 어떻게 그런 실력을 갖췄나.

 “일찍부터 스포츠를 즐겼죠. 가장 먼저 접한 건 농구였어요. 초등생 때부터 했죠. 농구를 하면서 근력과 균형감각 등을 키운 거죠.”

 대니는 원래 메도우스 중학교 소속이다. 그러나 풋볼 실력이 워낙 탁월해 리버티 중학교에 스카우트됐다. 공부와 농구는 메도우스에서, 풋볼은 리버티에서 병행한다. 미국 주니어 농구선수의 랭킹을 매기는 사이트(Hoops Scoops)에 따르면 대니는 전국 8학년생 가운데 24위, 파워포워드 부문에선 2위에 랭크돼 있다. 풋볼뿐 아니라 프로농구(NBA) 스타로도 대성할 수 있다는 소리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눈뜬 배경은.

 “아버지 영향이 컸죠. 로펌 변호사이자 스포츠광이에요. 미국 스포츠뿐 아니라 한국 국가대표의 야구·축구를 다 보시죠. 그래서 제게도 일찍부터 운동을 시키셨어요.”

●풋볼과 농구 중에서 더 좋아하는 종목은.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해온 스포츠가 농구였거든요. 사실 농구에 더 애착이 갑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농구보다는 풋볼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NFL 선수가 되는 게 꿈인가.

 “일단 제 목표는 아버지처럼 훌륭한 변호사가 되는 겁니다. 하버드, 예일이나 스탠퍼드 법대에 가는 게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고요. 주변에선 제 스포츠 능력에 박수를 더 많이 보냅니다. 하지만 전 일단 학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풋볼 필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대학들이 스카우트에 나설 텐데.

 “사실 나중에 큰 고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벌써부터 그런 고민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바로 앞에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믿거든요. 물론 마음 같아선 다 거머쥐고 싶죠. 사실 학업과 스포츠 모두 소홀히 하진 않을 겁니다.”

 그는 학업에서도 워낙 성적이 좋다. 전 과목 A학점을 받았고, 7학년 때 미국 대학입학시험(SAT)에서 2000점을 받았다. NFL엔 공부 잘한 쿼터백도 많다. 버펄로 빌스의 쿼터백 라이언 피츠패트릭은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해 대통령상도 받았다. 그의 얘기를 꺼내자 대니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됐음 좋겠네요, 하하.”

 일단 대니는 중학교 졸업 뒤 풋볼 명문인 ‘비숍 고먼’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 학교의 풋볼 팀은 2009년 798점을 올려 전국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웠다.

●롤 모델이 되는, 가장 좋아하는 풋볼 선수는 누구인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톰 브레이디(수퍼보울 3회 우승)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페이튼 매닝(1회 우승)을 좋아해요.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죠.”

●미국 국가대표로도 뽑힌 소감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요. 저를 항상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부모님께 가장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고요.”

 아들의 진로에 대해 홍씨는 “최종 결정은 결국 아이한테 맡기겠지만 만약 전국 최고 수준의 대학들이 그를 영입하려 달려든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안 변호사와 의사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아시안 쿼터백은 한 명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 쿼터백  미식축구에서 가장 눈에 띄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포지션. 쿼터백은 공격 시에 ‘센터’로부터 볼을 넘겨 받아 대부분의 플레이를 시작해 나간다. 전술을 지시하는 ‘야전 사령관’이다.


j 칵테일 >> 농구도 ‘선수’ … 경기당 42점





대니는 풋볼만큼이나 농구에서도 스타다.

 그가 이끌고 있는 메도우스 주니어 농구팀은 라스베이거스 중학 리그 소속으로 정규 시즌이 1일 마감됐다. 대니는 상대의 더블팀 수비를 받았음에도 이날 21점을 올리며 팀의 43-41 신승을 이끌었다. 대니는 평균 42점·14리바운드·6.5어시스트로 올 시즌을 마쳤고, 팀도 그의 활약에 힘입어 14승1패를 기록해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리그 상위 4팀만 올라가는 플레이오프는 9일 시작된다.

 메도우스 농구팀 감독은 대니 홍의 아버지인 조셉 홍씨다. 그는 낮에는 변호사, 저녁에는 농구팀 감독으로 팀을 이끄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에서 뭉친 건 2007년부터. 그해 이들 부자는 메도우스의 ‘아마추어 체육 연합(Amateur Athletic Union)’ 서부지역 우승을 이끌었고, 전국 주니어 농구 챔피언십에서 2007년과 2008년에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대니는 라스베이거스 리그에서는 아직 우승이 없다. 2년 전 결승에 올라 팀이 올린 43점 가운데 41점을 혼자 넣는 원맨쇼를 펼쳤지만 46-43으로 졌다. 지난해에는 팀의 전승 행진을 이끈 뒤 준결승전에서 석패했다.

 대니의 장기는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속사포 같은 슛, 그리고 파워포워드임에도 패스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자유투 성공률도 90%를 기록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 한국 농구대표팀에서 뛰는 것이었지만 “제가 미국 시민권자라 안 되겠죠?”라며 아쉬워했다. 

>> NFL 첫 아시아계 쿼터백 될 것

풋볼은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야구가 ‘미국의 여가(National Pastime)’라면 풋볼은 ‘미국의 열정(National Passion)’으로 불린다. 지난달 6일 텍사스주 알링턴의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NFL 결승전은 미국인 시청자만 1억1100만 명을 넘었다. TV 사상 최대 기록이다. 스타를 꿈꾸는 전국의 주니어 선수는 수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대학과 NFL 진출의 꿈을 이룬다.

  이런 ‘정글의 세계’에서 기자는 솔직히 처음엔 대니 홍의 실력을 믿기 어려웠다. 쿼터백이란 그만큼 꿰차기 힘든 자리이기 때문이다.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모두 한결같았다. “이런 아이는 처음 봐요. 15년간 중·고교와 대학 풋볼을 취재했어요. 그런데 대니 홍 같은 선수는 없었어요. 전국의 8학년생 쿼터백 가운데 1, 2위를 다투는 실력입니다. 팔 힘이 폭발적인 데다가 정교하기까지 해요. 아시안이라 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레이 브루어: ‘라스베이거스 선’의 풋볼 전문기자)

“한국인이 풋볼을 하는 것 자체가 놀랍죠. 그것도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자 백인들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쿼터백’ 포지션에서요. 중국의 야오밍이 아시안에게 불모지였던 미국프로농구(NBA) 문을 열었잖아요. 개척자였죠. 대니가 NFL에 진출한다면 미국 역사에 커다란 획으로 기록될 겁니다.”(질 페인터: LA 데일리 뉴스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하인스 워드, 윌 뎀프스, 벤 리버 … 미국 프로풋볼 빛낸 한국계 선수들

미국 프로풋볼(NFL)에선 알게 모르게 꽤 많은 한인과 한국계 선수가 필드를 누볐다.

 현역 선수로 활약 중인 한국계로는 수퍼보울 2회 우승에 빛나는 하인스 워드(34·피츠버그 스틸러스)와 벤 리버(32·미네소타 바이킹스)가 대표적이다. 리버는 프로 10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워드처럼 그의 어머니가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과 결혼했다.

 은퇴한 멤버로는 윌 뎀프스를 비롯해 유진 정, 존 리, 로이드 리 등이 있다. 뎀프스는 워드 외에 NFL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선수다. 수려한 외모로 여성 팬이 많았던 그는 2002년부터 볼티모어 레이븐스, 뉴욕 자이언츠 등을 거치며 최후방 수비수 로 활약해 통산 418태클 을 기록했다. 스포츠웨어 ‘언더 아머(Under Armour)’ 등의 모델로도 인기를 모았고, 지금은 샌디에이고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 출신인 어머니 박계옥(56)씨가 미국으로 이민해 당시 공군 사병이었던 동갑내기 윌리엄 뎀프스 시니어와 1977년 결혼했다. 뎀프스는 한국 문화에 익숙하다. 한국말도 곧잘 하는 그는 “집에 김치와 라면이 없으면 허전하다”고 말한다. “혼혈 스타인 영화배우 다니엘 헤니처럼 한국과 미국 무대를 넘나드는 국제적 스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 출생인 존 리는 부모가 모두 한인이다. 그는 풋볼 명문 UCLA에서 뛰면서 84년 미국 대학풋볼 4대 대회 중 하나인 로즈보울(Rose Bowl)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2001년에는 UCLA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8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현 애리조나)에 지명된 뒤 한 시즌만 뛰었다.

  유진 정 역시 부모가 모두 한인이다. 92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지명됐는데, 지금까지도 아시안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지명순위(13번)로 남아 있다. 뉴잉글랜드에서 세 시즌을 뛴 뒤 잭슨빌 재규어스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등을 거쳐 현재 필라델피아 이글스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로이드 리는 98년 샌디에이고 차저스에 지명된 뒤 2004~2009년 시카고 베어스에서 코치 등으로 활동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