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제자들이 받은 아카데미상만 32개, 할리우드의 ‘스토리 대부’ 로버트 매키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어댑테이션’의 한 장면이다.

 케이지는 영화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고민하는 감독, 찰리 카우프만 역을 맡았다. 카우프만이 고심 끝에 찾는 곳은 로버트 매키의 ‘스토리’ 세미나. 수백 명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모인 자리에서 카우프만은 매키에게 질문을 던진다.

카우프만: (주저하면서 일어나) “선생님, 별일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려는 작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변하지도 않고, 깨달음도 없는 그런 세계, 문제도 많고, 논쟁거리도 많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실제 세상이 반영된 그런 세상 말입니다.”

매키: “실제 세상?”

카우프만: "네, 선생님.”

매키: "실제 세상? 세상에서 아무것도 안 일어난다고? 미쳤어?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지 못해? 대량학살, 전쟁, 부정 부패. XX 매일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XX 매일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파괴시키려는 결정을 내리고 있어. 사랑을 찾았다가 잃어버리지. 세상에! 아이가 엄마가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해. 누군가는 굶주린다고! 여자 때문에 절친한 친구를 배신하는 세상이야. 세상에서 이런 스토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르네!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영화로 내 소중한 2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겠다는 거야?”





카우프만: (겁에 질려 자리에 앉으며) “네, 감사합니다···.”

 로버트 매키(Robert McKee·69). 뉴욕 타임스는 “할리우드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제외하고는 모두 로버트 매키의 ‘스토리’ 세미나를 들었을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 ‘다빈치코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뷰티풀 마인드’ ‘라따뚜이’···.

 모두 매키의 세미나 문하생들 작품이다. 영화뿐 아니다. 유명 미드 역시, 그의 제자들이 허다하다. ‘위기의 주부들’ ‘CSI’ ‘로 앤 오더, ‘그레이즈 아나토미’ 등이 대표적 예다. ‘스토리’ 세미나를 거친 제자들이 받은 아카데미상만 32개, 에이미상이 158개에 달한다. 후보작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하다. 감독이나 극작가뿐 아니다. 줄리아 로버츠, 멕 라이언, 브룩 실즈, 다이앤 키턴 등 영화배우들 역시, 더 좋은 연기를 위해 그의 세미나를 들었다. ‘영화 시나리오의 대부’라 불리는 그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만났다.

조진화 프리랜서

그는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만큼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영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 영화를 ‘스토리 텔링의 혁신’이라고 강조하면서, 프랑스 영화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했다고 했다. 영어 자막과 소리를 모두 삭제하고 화면만 봐도 한국 영화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는 호수 속 떠 있는 절간, 한강의 괴물 등 흔하지 않은 주제를 선정해 미묘하게, 속도감을 조절하고, 영성과 폭력을 환상적으로 조합하면서 영화를 이끌어 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박찬욱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봉준호의 ‘괴물’ 등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섬’을 언급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오, 정말 그 여자”라면서 영화의 섬뜩함을 그대로 표현했다. ‘괴물’에 대해선 "호러와 비정상적인 가족의 유머가 혼합된 스토리는 한국 감독만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잘나가는’ 한국 감독들에게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은 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한국에는 아직까지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감독이 없다.

 “내 판단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문제가 많은 스토리를 만드는 감독이다. 시나리오에 문제가 많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내 살아남았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라. 영화 끝부분이 너무 밋밋하다. 아무리 전쟁영화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스토리가 끝나서야 되겠나. 이런 만화 같은 마지막 장면이 어디 있나. 하지만 영화 자체가 스펙터클하니까 사람들이 그냥 넘어간다. 한국 감독들이 스필버그가 되고 싶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대신 폴 해거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감독을 본받길 바란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심리학, 사회학이 담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하고 있다. 한국 영화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족 구성원 간 힘의 역학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런 권력(파워)을 드라마로 만들어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낸다. 박찬욱의 영화는 복수에 관한 것이다. 권력을 들여다본 것이다. 스필버그 감독보다 훨씬 사회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도 아직 세계적인 수준은 아니다.

 “한국 영화는 돈이 없다. 20억 달러 제작비가 없는 게 문제다. 아직도 할리우드가 영어로 제작된 영화로 돌아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한국어 영화의 핸디캡도 있다. 할리우드의 또 다른 행운은 스타 배우들이다. 물론 한국에도 뛰어난 배우가 많다. 하지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아니지 않나. 그러나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할리우드도 얼마나 그 명성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뛰어난 작가들은 이미 TV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돈이 이미 아시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제 중국이나 일본 영화계가 따라올 수 있는 아시아만의 높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영화산업이 모두 영국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타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 영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섬세한 영화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매키는 아역 배우를 거쳐, 영화 작가, 남가주대(USC) 영화학 교수를 거쳐 현재 전 세계를 돌면서 ‘스토리’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스토리’ 세미나는 교수 시절 가르치던 과목을 발전시킨 것으로 4일 동안 논스톱으로 10시간씩 스토리의 구성, 캐릭터, 장르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운다. 4일 수강료가 750달러(약 80만원) 정도다. 마지막 날에는 ‘카사블랑카’나 ‘차이나타운’ 같은 영화를 보면서 장면별 해부학에 들어간다. 뉴욕과 런던·LA는 물론 매년 남미와 유럽·아시아를 돌면서 가르치는 스토리 세미나에는 수강생 수천 명이 몰린다.

 그는 최근 비가 등장하는 ‘닌자 어쌔신’을 봤다고 했다. 그는 비의 연기를 어떻게 봤을까.

 “비의 연기는 다이너마이트였다. 카리스마가 넘쳤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를 처음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작은 역할이었지만, 눈이 피트 쪽으로 향하더라. 그런 카리스마가 있는 배우는 코너에 처박혀 있어도 눈이 그쪽으로 움직인다. 비가 만일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한국을 빠져나와 LA나 런던으로 옮겨 문화에 몰입돼야 한다. 김치 문화를 버리고 다른 세상 경험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일을 겸하면서 하려면 힘들겠지만, 100%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청룽(成龍)도 해내지 않았나.”

  매키 주변에는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와 자문하는 할리우드 작가들이 언제나 많다. 어려운 일이다. 컨설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문장을 고치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그 작가의 산물이 아닌 매키의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조심한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스토리는 ○○○이다”이지 스토리 혹은 시나리오를 쓰는 법이 아니다. 재능은 가르쳐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재능이 없다 판단되면, 면전에서 “너 실력 없어”라고 얘기한다.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 챙기기엔 세상에는 실력 없는 작가가 너무 많다.

●실력 있는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를 나누는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재능은 있어야 한다. 재능은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작가들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스타일을 무의식적으로 베끼고 있다. 혹은 읽었거나 봤던 영화 중에서 좋았던 것만 짜깁기하는 경향이 많다. 독창성이 없는 이유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형식(form)이지, 공식(formula)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작문·스토리라면 이런저런 요소가 포함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가 실력 있는 작가다. 계란과 우유, 기본적인 재료만 던져주었을 때 100명 중 99명은 오믈렛을 만들고, 1명은 전혀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재능이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술(craft)은 배울 수 있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 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둘러싸고 모든 일이 일어난다. 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열정은 많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최고 실력에 다가가려는, 자신을 끝까지 다그치는 힘이 없다. 절대 ‘이 정도면 됐지’에 안주하지 말라. 나만의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이 지난 10년간 앵무새처럼 지껄였던 대화를 그대로 따라 하도록 놔두겠나?”

●당신의 책 『스토리』는 한국어로 번역돼 영화학도들의 지침서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 세미나가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와 맞물려 스토리 세미나를 처음으로 열려고 했지만, 여건상 성사되지 못했다. 아내 미아의 고향이라 한국에 대한 동경이 크다. 한국에서 진행한다면, 큰 이벤트로 만들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진행되는 스토리 세미나는 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지원해준다. 스폰서 역시 디즈니·MTV 등과 같은 대기업들이 줄을 잇는데, 한국은 그런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열정적인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을 모두 만나고 싶다. 그들에게 진정한 ‘임팩트’를 던져주고 싶다.”


j 칵테일 >> “3막 고쳐 쓴다면 출연하지요”





‘어댑테이션’ 제작팀에서 그를 영화 속에 넣고 싶다고 연락해 오자 그는 두 명에게 자문했다. 한 명은 작가 윌리엄 골드먼.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시나리오로 아카데미상 극본상을 거머쥔 골드먼은 단번에 "안 돼, 하지마. 할리우드를 몰라서 그래? 널 아마 웃음거리로 만들걸”이라며 반대했다. 아들 폴에게도 전화했다. “아빠, 하세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잖아요!” 그는 아들의 조언을 따랐다. 단, 조건을 달았다. 자신의 역을 맡을 배우를 직접 고르는 것과 영화 3막을 다시 고쳐 쓰라는 것이었다. 영화 시나리오 대부의 자존심상 스토리가 이상한 영화에는 출연할 수 없으므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