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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슬픔에서 배우지 못하면 남이 나를 슬퍼하게 된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엽기적인 얘기 하나 해야겠습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옛날 얘기부터 하렵니다. 『구당서(舊唐書)』에 보이는 기록입니다. 안사의 난 당시 지방관 장순이 지키는 수양성을 반란군이 포위했을 때의 일이지요.

“오랫동안 성이 포위 공격을 당해 성 안의 양식이 바닥나자 사람들은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고, 죽은 사람의 뼈까지 불에 구워 먹었다. 장순은 자기 첩을 군사들 앞에서 죽이고 그 고기를 군사들에게 내놓으며 말했다. ‘공들이 나라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한마음으로 성을 지키니 내 살점을 베어 그대들을 대접하진 못할지언정 어찌 이 여인을 아까워해 위기를 보고만 있겠는가’. 군사들이 울며 차마 먹지 못하자 장순은 먹을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성 안 부녀자들을 다 먹고 나서 남자 노인과 아이들을 차례로 먹었다. 그때 먹힌 사람이 이삼만 명이나 됐으나 백성들의 마음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놀라운 얘기지요? 식인의 희생자가 삼만 명에 이른다는 게 놀랍고, 백성들이 순순히 따랐다는 게 놀라우며, 이야기를 전하는 사관이 장순을 충신으로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놀랍습니다.

1300년 전 일을 오늘날 도덕가치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인들 특유의 과장도 틀림없이 끼어들었을 테고요. 하지만 무엇을 고려해도 전 아니라고 봅니다. 장순은 끝내 성을 지키지 못하고 반란군 손에 최후를 맞았습니다. 군사들과 남은 백성들도 모두 도륙되고 말았음은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장순이 헛되이 지키려 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백성들의 안녕이 아니었습니다. 정권의 안정이요, 주군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그것도 정치를 잘못해 백성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무능한 정권과 군주를 위해서 말이지요.

당시 지배논리가 그랬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아방궁부』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섯 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그들 자신이지 진나라가 아니라네. 진나라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지 천하가 아니라네. 여섯 나라가 백성을 사랑했다면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네. 진나라가 백성을 사랑했다면 3세 아닌 1만세까지 임금 노릇을 한대도 누가 멸망시킬 수 있겠나.”

장순이 백성을 사랑했다면 그들의 안전을 조건으로 자신과 지휘부의 목을 내놨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칼레의 시민’들처럼 말이지요. 모름지기 정치란 생겨난 순간부터 백성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위정자들이 권력의 향배만 좇으며 그 과실을 탐하고 즐기니 윗물이 썩고 아랫물도 따라 썩어 백성들이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들이 갈증과 굶주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됐을 때 필연적으로 민란이 일어났음을 역사는 말해 주지요. 지금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불태우고 있는 시민혁명의 불꽃도 다른 게 아닙니다.

헛되이 역사의 물길을 거슬러 자기 백성들에게 대포를 겨누는 광기의 지도자가 있더라도, 그래도 그들은 좀 낫습니다. 그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건 빵과 우유가 아니라 자유니까요. 지도자를 잘못 만나 성 안에 갇히게 된 장순의 백성들이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북녘 동포들 말입니다.

적이 쳐들어온 것도, 포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역시 헛되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무모한 지도자에게 이끌려 영문도 모르고 성 안에 갇힌 겁니다. 지도자 스스로 입구를 막아버린 성벽 안에서 굶주림은 필연입니다. 늘 듣던 얘기고 늘 보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 흘러나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저 뜬소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기근이 심했던 90년대 중반에도 들리던 소리라 예사롭지 않습니다.

북녘 땅 지도자와 그 아들에게 뭐래 해봐야 허무할 뿐입니다. 백성의 안녕보다 자신의 안위가 관심인 그들의 벙커에선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요. 대신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두목의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진나라 사람은 슬퍼할 겨를이 없었겠지만 후세가 그를 슬퍼해 주네. 하지만 슬퍼만 하고 배우질 못하니 다시 후세로 하여금 자신을 슬퍼하게 하노라.”

북녘의 현실을 슬퍼만 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정신을 안 차리면 누가 나를 슬퍼해 줄지 모릅니다. 지도자를 꿈꾸거나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억해 두고 늘 반문해 보십시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잠언입니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 사는 것인가(牧爲民有乎 民爲牧生乎).”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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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