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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콘퍼런스 큐레이터] ‘18분 마법’ 이끄는 ‘숨은 손’ 앤더슨




TED 콘퍼런스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이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공연예술센터에서 TED 강연자를 소개하고 있다. [TED 제임스 덩컨 데이비드슨 제공]


통섭형 세계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열리고 있는 TED 콘퍼런스의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TED를 세계적인 지식축제로 키운 데는 앤더슨의 이러한 DNA가 큰 힘이 됐다.

 앤더슨은 1957년 파키스탄 오지에서 영국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3살 때까지 히말라야 산속의 미국계 학교를 다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 철학으로 바꿔 졸업했다. 영국에서 출판사업으로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9년 뒤 사업 터전을 미국으로 옮겼다. 지금은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을 하나로 아우르는 TED에 전념하고 있다.

◆콘퍼런스의 숨은 ‘마법사’=앤더슨은 세션 때마다 무대에 올라 강연자를 소개한다. 하지만 단순한 사회자가 아니다. 기립박수를 받는 강연자가 있으면 청중을 대신해 찬사를 전하고,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콘퍼런스 분위기를 좌우하는 사람이다.

 무대 밖 역할은 더 크다. 강연자를 선정하고 섭외하는 데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콘퍼런스의 ‘큰 그림’을 놓고, 각각의 강연 내용을 조율하기도 한다.

 3일(현지시간) 한국인 최초로 TED 무대에 오른 데니스 홍 교수는 “강연 주제를 놓고 앤더슨과 2시간 동안 전화로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로봇공학자로 유명하다. 앤더슨은 그에게 “무대 위에서 직접 로봇 작동 시연을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홍 교수는 최근 테스트 주행에 성공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소개하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홍 교수 의견이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그에게 할당된 시간은 18분보다 줄어들었다.





◆2001년 인수 후 오늘의 TED로=앤더슨이 TED를 인수한 것은 2001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TED는 전통적인 콘퍼런스에 가까웠다. 앤더슨은 회사까지 남에게 맡기고 TED에 전념한 끝에 오늘의 TED를 만들었다.

 젊은 혁신가들을 키우기 위해 장학생(TED 펠로) 제도를 만들었고,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돕기 위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온라인 교육포럼(TED-ED)도 곧 만들 예정이다. 또 세계 곳곳에 TED 형식을 빌린 독립모임(TEDx) 설립을 후원하고 있다.

◆지도는 없지만 나침반이 있다=앤더슨은 2일 외국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TED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TED의 미래에 대해 “지도는 없지만 나침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 엘리트 모임에서 세계인의 ‘지식 축제’로 성장한 TED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어디로 가든 TED의 이상과 원칙만은 지켜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상과 원칙은 TED의 모토 ‘확산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강연 시간(18분)이 짧다는 지적에 대해선 “청중이 지적 자극을 받고 ‘아하! 하게 되는 순간(Aha! Moment)’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업 후원이 많고 최고경영자(CEO)들을 무대에 많이 세운다는 지적에 대해선 “대기업들은 정부나 개인이 하기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규모와 능력을 갖고 있다. 세계를 바꾸기 위해선 반드시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공짜지만, 퍼뜨리는 데는 돈이 든다”고 했다.

◆딸 잃고도 TED 진행=앤더슨은 지난해 말 스물네 살된 딸 조이(Zoe)를 잃었다.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였다. 조이는 아버지처럼 융합형 인재였다. 신경과학 석사로 스킨스쿠버 다이버이자 화가였다. 2006년부터 TED에 참가해 열심히 앤더슨을 도왔다.

 앤더슨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딸을 잃은 참담한 심경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하지만 TED 개막 직전 참가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선 이렇게 다짐했다. “올해 TED에 빠질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결코 조이가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안다. 조이를 위하는 최선의 길은 TED를 잘 준비하는 것이다.” 2주 뒤 그는 약속을 지켰다.

롱비치(미국)=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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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