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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토끼띠 세 사람의 환갑잔치




정진홍
논설위원


# 환갑(還甲), 회갑(回甲), 화갑(華甲)이란 말 그대로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만 나이 예순이요 세는 나이 예순한 살을 이른다. 예전엔 ‘환갑노인’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 나이론 명함도 못 내민다. 우리나라에 80세 이상이 100만 명이 넘고 바야흐로 ‘100세 시대’를 향해 가니 더욱 그렇다. 현재 나이 곱하기 0.7을 하는 게 100세 시대의 나이 계산법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환갑나이라고 해봐야 마흔두, 세 살에 불과하다. 적어도 85세는 돼야 예전의 환갑이란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요즘은 여간해서 환갑잔치 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 가까운 지인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재미난 환갑잔치를 합동으로 펼쳤다.

 # 서영태, 이강호, 권기찬. 모두 1951년 토끼띠다. 이들은 동년배라는 공통점 말고도 모두 적잖은 삶의 부침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서영태 전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아부다비의 한 투자사(IPIC)에 팔린 후 다 죽어가던 회사를 되살려 8년 넘게 이끌며 성장시켜 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다시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 자리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물러났다. 으레 그런 일을 겪으면 마음에 응어리가 지고 그것이 노여움으로 변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는 그 마음의 응어리를 노여움에 포박당하지 않고 지혜롭게 풀어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되레 웃으며 스스로의 환갑잔치에서 이탈리아 가곡을 힘차게 불러 젖히면서 또 한 번의 인생을 새 출발하는 각오를 다졌다.

 #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회장은 육사 29기 대표화랑 출신이다. 육사생도 중 최고를 지칭하는 대표화랑은 거의 예외 없이 별을 달지만 그는 별을 달기는커녕 대위 시절 군문을 떠나야 했다. 당시 하나회에 가입하라는 군 선배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일찍 군문을 떠났기에 육사 29기 출신들이 한 등급씩 더 올라갈 수 있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만큼 그에 대한 군인으로서의 기대치는 높았다. 하지만 그는 운명의 장난처럼 대위로 예편한 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민간회사에 입사해 해외시장을 누볐다. 그리고 지난 89년 그런포스펌프가 한국에 진출할 당시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250대1의 경쟁을 뚫고 꿰찬 후 22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뛰어 왔다. 그는 김태영 전 국방장관과 육사동기생이다. 왜 그라고 4성 장군, 국방장관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홀로 있으면 스멀스멀 안개처럼 피어오르곤 했을 마음속 깊은 억울함과 노여움들을 달래고 풀 길은 더욱 열심히 세계를 누비며 뛰는 것밖에 없었으리라. 그렇게 몸부림치며 달려온 덕분에 이제 그는 장관 동기생도 부러워하는 존재가 됐다.

 # 권기찬 웨어폰인터내셔널 회장은 옷에 미친 사람이다. 그는 겐조·소니아리키엘 등 30여 개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해 유럽, 특히 프랑스와의 경제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명품시장이 재편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한 그는 자신이 아끼던 빌딩마저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기업가로서 자신의 생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아픔들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새롭게 시장을 내다보며 더욱 도전적인 자세를 취했다. 아울러 어려운 때일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생각에서 보호시설에 위탁된 아동들을 데려다 자신이 운영하는 오페라갤러리에서 맘껏 보고 즐기고 장난치며 꿈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도 잃지 않았다. 그 역시 난관 속에서 스스로를 노여움의 늪으로 빠뜨리지 않고 오히려 긍정과 낙관으로 자신의 새로운 인생활로를 열고 있었다. 결국 이들 세 사람의 환갑잔치는 그 어떤 좌절과 난관과 아픔 속에서도 삶은 미련과 억울함, 그리고 노여움에 포박당할 수 없는 더 없이 소중한 것임을 웅변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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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