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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약골 정조·루이14세와 아편 처방




조우석
문화평론가


조선조 역대 왕의 평균수명은 44세이지만 정조는 49세까지 살았다. 요즘이라면 꽃중년 나이였겠지만, 당시 그가 병을 달고 살았다는 정보가 『홍재전서(弘齋全書)』에 비친다. 젊을 적 책과 씨름하며 날밤을 새웠고, 즉위 뒤 피로가 누적됐다. 처방은 빈랑나무열매와 쥐눈이콩. 이때 아편 처방도 함께 받았으나 효험을 봤던 건 남령초(南靈草), 즉 담배였다. ‘골초 정조’의 모습은 지난해 말 TV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잠시 비춰졌지만, 정조 스스로의 관찰이 이렇다.

 “불기운으로 막힌 가슴을 뚫었고, 연기의 진액이 폐를 적셔 편히 잘 수 있었다.” 정조뿐이랴? 중풍으로 고생한 태조, 폐렴·울화병으로 사망했던 인조·숙종이 각각 보여주듯 질병에 시달린 건 왕·백성이 다를 게 없다. 분명 질병은 인간의 조건이고, 치병(治病)은 영원한 숙제다. 대중역사서 중 절대권력자의 질병에 관한 생생한 정보가 담겨있어 여간 흥미롭지 않은 게 사학자 이영림(수원대 교수)이 쓴 『루이 14세는 없다』(푸른역사)이다. 관전 포인트는 루이 14세의 병도 병이지만, 치료방식을 둘러싼 주치의끼리의 경쟁이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실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이었다. 수십 년간 의사들이 기록한 『건강일지』 덕에 그가 피부병·편두통·치통에 시달렸고 통풍·당뇨·성홍열로 죽다시피 했었다는 병력도 알게 됐다. 유독 게걸스러웠던 식탐이 건강을 망쳤다. 그때만 해도 “무제한 먹을 음식이 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상징”(342쪽)이라서 루이14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불러 모은 신하들의 포식을 지켜보는 걸 매우 즐겼다. (프랑스 요리의 명성도 그때 만들어졌다)

 죽은 뒤 부검해보니 창자의 부피와 길이가 보통 사람의 두 배였다지만, 눈길을 끄는 건 주치의의 처방이다. 그는 왕의 편안한 잠을 위해 아편 처방과 사혈(瀉血)요법을 자주 썼다. 놀랍지 않은가? 정조가 받은 처방과 비슷하고, 한방(韓方)의 체질론과 비슷하다. 당시 주치의였던 발로는 몽펠리에대학 출신. 이 대학은 아랍 연금술의 영향으로 아편을 치료제로 자주 사용했다. 18세기 초까지도 서양의학은 고대 그리스의 사람 갈레노스의 질병이론을 따랐던 것이다.

 “갈레노스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피·담즙·흑담즙·점액 등 4종류의 체액이 있다. 이 체액에 따라 체질과 성격도 다르다.”(344쪽) 흥미롭다. 역사 상식이지만, 동서의학은 출발이 같다. 특정 부위와 국소보다는 몸 전체의 밸런스와 체질을 중시했다.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보는 전일의학(holistc medicine)이었다. 이를테면 당시 몽펠리에대학의 라이벌인 파리대학은 생리학·해부학에 강했다지만, 그 대학 출신의 루이 14세 후임 주치의 다캥도 사혈요법에 의지했다.

 그러던 서양의학은 현미경으로 병원균을 찾은 뒤부터 변신했다. 인류의 오랜 적 전염병을 잡으면서 ‘의학권력’ 헤게모니도 쥐게 된다. 이렇듯 흥미로운 게 의학담론이다. 신간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김남일 지음, 들녘)도 그걸 재확인시켜준다. 어떤 자리에서 필자가 “의학은 이학(理學)이자, 철학 즉 인문학”이라고 했더니 의사 후배가 맞장구 쳤다. “물론이죠. 서울의대도 최근 의사학(의학역사)교실을 인문의학교실로 이름을 바꿨거든요.” 이제 시작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서의학이 다시 만날 것도 분명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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