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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답 이회창 선생’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개봉 중인 우디 앨런 감독의 ‘환상의 그대’에는 앤서니 홉킨스가 나온다. 그는 ‘양들의 침묵’으로 199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명배우다. 하지만 이제 그는 최정상에 있지 않다. 주연도 아니다. 나이는 일흔을 훌쩍 넘겼다.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 40년을 함께한 아내와 이혼을 한다. 그러면서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며 보여주는 능청스러움이란. 거기다 얼굴 주름이 말해주듯 지나온 세월에서 묻어나는 매력이란. 그의 표정에선 사심(私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겐 전성기 시절 그보다 오히려 지금이 좋아 보였다. 영화관을 나서며 문득 자신을 “그랜저 타다 요즘 티코 탄다”고 비유한 이회창 대표 생각이 났다. 정점에 있을 때보다 존재감은 덜하지만 그때보다 나아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답 이회창 선생’. 이건 요즘 여의도에서 이 대표에 대해 하는 말이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현안에 대해 정답만 말한다고 해서 나온 거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이 대표를 보좌했던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은 “지금같이 거침없는 발언과 감각을 보여줬다면 대선에서 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다. 그러고 보면 그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 유난히 말도 무뚝뚝하고 권위적으로만 비친 정치인이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독선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8일 조용기 목사를 향해 던진 말이다. 조 목사가 이슬람채권법을 반대하며 ‘대통령 하야 운동’을 언급한 것에 대한 견해였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의 종교계를 향한 ‘도발’은 이례적이다. “한·미 동맹의 기초를 닦은 이승만같이 강단 있는 대통령은 왜 없나”라거나 “한나라당이 개헌 당론을 못 모으는 게 권력누수다”라는 등의 최근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말엔 가톨릭을 향해서도 날을 세운 적이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 “추기경을 성토할 용기로 김정일 지도부를 성토하라”고 한 것이다. 사제단이 정진석 추기경의 4대 강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용퇴를 요구하자 가만있지 않은 것이다.

 2일 오후 국회 자유선진당 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발언에 대해선 더 언급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했으면 됐지 자꾸 얘기를 하면 부연하는 게 돼서…”라며. 다만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이라고 여운은 남겼다. 그날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실제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로부터 “오만불손한 이회창씨는 사과하고 정계 은퇴하라”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현안 발언에 대한 평가가 좋다’고 하자 이 대표는 “아유, 그건 모르겠는데 나한테 빵빵 총을 쏘아대는 사람은 많다”며 넌지시 괴로움도 토로했다.

 이 시대,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에겐 존경받을 만한 원로가 많지 않다. 이 대표가 사심 없이 ‘어른의 목소리’로 그런 원로가 됐으면 한다. 다시 권력을 지향하기보다 어른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앤서니 홉킨스를 계속 영화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듯 ‘정답 이회창 선생’이란 말을 오랫동안 들었으면 한다.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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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