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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모리화(茉莉花)의 유전(流轉)

모리화(茉莉花)의 유전(流轉)



중국인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모리화차(茶)와 노래이다. 모리화차는 중국인이 매일 마시는 화차(花茶)의 일종이다. 일반 차에는 없는 독특한 향과 모리화의 하얀 꽃잎이 들어 있는 모리화차는 중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환영하는 의미에서 잘 내 놓는 차다. 종류도 수 없이 많지만 일반 대중이 가장 즐겨 마시는 차다. 모리화차는 중국의 송나라시대(宋朝)에 차 산지인 푸젠성(福建省)에서 산지에 흔히 피는 신선한 모리화 꽃잎을 녹차에 섞어 꽃의 향기가 차 잎에 흡수되도록 하여 독특한 차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후 향편(香片)이라는 이름으로도 전국으로 보급되어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아름다운 모리화여

사랑하는 님에게

한 송이 꺾어 드리고 싶네

눈 보다 희고 아름다운 모리화여“



이러한 가사로 시작되는 모리화 노래는 중국의 건륭(乾隆)황제 연간에 양쯔강 남쪽에 유행했던 민요의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의 아열대 산지에 자생적으로 피는 모리화는 그 향과 순백의 색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고 그 것이 민요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이나 도라지처럼 중국을 상징하는 노래로 정착 되었다.



1896년 청조(淸朝)의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이 유럽과 러시아를 순방하였다. 방문국에서는 연주할 국가를 필요로 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국기로서는 삼각 황룡기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국가는 없었다. 리훙장은 중국에서는 누구나 아는 모리화곡을 임시 국가로 지정하였다. 물론 가사는 청황실과 관련 되는 것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 후 유럽에서는 중국을 상징하는 곡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1920년대 초 이태리의 작곡가 푸치니가 중국의 투란토트 공주를 주제로 한 오페라 투란토트를 만들 때 중국의 민요 모리화 곡을 주제곡의 하나로 삽입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 중국 건국 이후 중국의 국가는 항일(抗日)의용군의 행진곡으로 바뀌었지만 모리화 노래는 여전히 중국을 상징하는 노래로 변함이 없었다.



1999년 12.19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될 때 모리화 곡이 연주되었고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의 폐막식 때 4년 후 올림픽 개최지 베이징을 소개하면서 모리화 노래가 연주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국가 지도자가 해외 순방 시 중국의 교민과 함께 즐겨 부르는 노래도 모리화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중국 당대의 최고 작곡가 탄둔(譚盾)이 편곡한 모리화곡이 메달 시상식 때에 흘러 나왔다. 이러한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 온 민요가 중동의 모리화(재스민)혁명으로 정치화 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시민혁명인 재스민혁명은 튀니지 벌판에 널리 피는 재스민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본래 아열대 남 중국과 인도가 원산지인 모리화는 그 아름다움과 순백색으로 산스크리스트어인 “말리카”(眞珠)에서 유래되었다. 모리화는 3-6세기 남북조 시대에 중국을 지배한 북방의 기마 민족과 함께 서쪽으로 중앙 아시아에 전래되었고 그 지역을 지배한 아랍인에 의해 다시 북아프리카 튀니지까지 흘러갔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야스민(yasmeen)이 영어 식 발음으로 재스민(jasmine)이 되었지만 모리화의 독특한 향과 순백이 청결을 좋아하는 아랍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튀니지의 국화(國花)가 되고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시화(市花)가 된 모리화가 혁명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가지고 떠돌아 다니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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