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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지성이면 감천




주철환
중앙일보 방송설립추진단 콘텐트본부장


살아온 세월에 비해 노화가 좀 더딘 것 아니냐는 덕담을 들으면 겸손을 가장해 대꾸한다. “친구들이 축구할 때 그늘에서 가방 지켰거든요.” 사실이다. 학교운동장에서, 군대연병장에서 녀석들이 햇살 아래 온통 땀범벅이 될 때 나는 자외선의 공격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거다. 가끔 주전자에 물 채워서 봉사활동 한 게 내 축구장 이력의 전부다.

 간절히 뛰고 싶은데 끼지 못했다면 한이 됐을 텐데 관객의 즐거움을 일찍이 터득한지라 나름의 철학(?)이 형성돼 있었다. ‘그들은 골대만 바라보고 발로 뛰지만 나는 큰 그림을 보며 마음으로 달린다’. 질풍노도의 시절에 그들이 소리 지르며 몰려다닐 때 나는 혼자서 박수 치며 노래 불렀다. 그들이 흘린 건 땀이지만 내가 주운 건 꿈이었다.

 포브스코리아가 창간 8주년을 맞아 ‘한국의 파워셀레브리티’ 40인을 뽑았는데 박지성이 2위를 했다. 1위가 소녀시대이므로 지성은 한국스포츠스타 중 가장 유명한 선수, 아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나아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인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얼마나 오래 갈까?

 유능함과 유명함은 다르다. 유명하다는 건 간단히 말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뜻이다. 유명세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업보(!)다. 박수의 향기에 취하면 명성의 노예가 된다. 인기는 시한부지만 인격이 수반하면 연장이 가능하다. 판단의 근거는 오직 드러난 언행인데 지성의 사례를 보면 예감은 좋다.

 경기 중에 보면 지성에겐 유독 넘어지는 장면이 많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인데 왜 그렇게 자주 넘어질까. 답은 금세 나온다. 열심히 뛰기 때문이다. 요령이 없는 게 아니라 요령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부상은 도전의 산물이다.

 인터뷰 화법도 개그맨 성대모사의 단골 레퍼토리다. 높낮이 없는 수줍은 말투에 유독 ‘때문에’라는 표현이 많다. 그것도 사연이 있다. 이기면 내 덕, 지면 네 탓이라는 말이 넘치지만 그는 반대로 이기면 감독이나 팀의 공, 지면 내 잘못이다. 앞에 무슨 이야기를 하건 그는 그 이유 ‘때문에’ 잘될 거라고 말한다. 리더의 조건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위인전을 읽지 않는 요즘 소년들에게 지성은 선망의 대상이자 희망의 증거다. 스무 살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지금까지’의 삶보다 ‘지금부터’의 삶이 중요하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인정받지 못했지만 원망하는 시간보다 연습하는 시간을 더 가졌다. 경쟁심을 키운 게 아니라 경쟁력을 길렀다. 맑은 하늘 아래, 푸른 잔디 위에서가 아니라 궂은 날씨, 맨땅에서 지성은 만들어졌다.

 마침 이번 토요일은 프로축구 K리그가 8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지성은 말한다. 그의 성공은 고난의 유익함을 보여준다. 남들이 근심할 때 그는 결심했고 남들이 걱정할 때 그는 결정했다. 아직은 몸값, 이름값이 크지 않아도 내일을 향해 묵묵히 달리는 많은 선수들에게 그를 대신하여 한마디 한다. 최고를 꿈꾸는가. 행운은 만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 그날 그대가 바로 최고다.

주철환 중앙일보 방송설립추진단 콘텐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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