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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쏠까요 말까요”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불을 붙인 나치 독일의 히틀러(Hitler)는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을 손아귀에 넣자 소련(蘇聯) 침공을 계획했다. 41년 소련 접경 지대에 독일군을 증강하고, 비행기로 소련 영공을 정찰했다. 이런 정보는 스탈린(Stalin)에게 속속 들어갔다. 영국의 처칠 총리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도 스탈린에게 독일군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다.

 스탈린은 이를 무시했다. 세계대전 발발 직전 체결한 독-소 불가침조약을 굳게 믿었다. 독일이 서쪽과 동쪽 두 전선에서 양면 전쟁을 감행할 리 없다고 판단했다. 영국과 미국이 독·소 간에 전쟁을 부추기려 농간을 부린다고 오판했다. 일선 사령부에 엉터리 정보는 암호문으로 보내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그해 6월 22일 300만 명의 독일군이 소련으로 진격했다. 소련군은 후퇴를 거듭했다. 소련군 비행기 1200대는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파괴됐다. 불과 5개월 만에 독일군은 모스크바 근교까지 진격하며 소련을 유린했다. 전쟁 초기 소련의 엄청난 피해와 수모는 대비를 게을리한 스탈린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탈린이 “내가 다 망쳤다”며 절망했을 정도였다. 물론 전쟁은 소련의 승리와 히틀러의 몰락으로 끝났다.

전쟁에서 순간의 상황판단은 나라의 운명을 판가름한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제후 양공(襄公)이 BC 638년 초나라 대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는 동안 선제 공격을 하자는 건의가 있었지만 양공은 비열한 전법을 쓸 수는 없다며 거부한다. 강을 다 건넌 초나라 군대가 전열을 갖추고 싸운 전투에서 송나라는 대패한다. 양공은 부상을 당해 죽어버리고 만다. 어리석은 대의명분이나 인정을 내세우다 화를 입는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 유래한 내력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1일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를 순시하면서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반공화국 심리 모략 행위의 발원지를 직접 조준해 격파 사격하겠다”는 북한의 위협이 실제로 벌어질 경우 현장 지휘관의 상황판단에 따라 대응하란 뜻이리라. 손자(孫子)는 “병법은 속임수”라고 했다. 가혹하게 반격한다는 허장성세라도 부려야 상대가 우습게 보지 못하는 법이다. 공격을 받고도 쏠까 말까를 망설이는 군대라면 겁낼 이유가 없다. 언제부터 우리 군대가 ‘쏠까요 말까요’를 고민하는 지경이 됐는가.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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