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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92) 수쿠크 도입 반대의 뿌리









이슬람 채권(수쿠크) 도입을 놓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보수 개신교 단체는 “절대 불가”를 외치며 반대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의 대답은 다릅니다. “이건 경제 문제다. 이슬람 금융의 도입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합니다.



 참, 궁금하네요. 보수적인 개신교 그룹은 왜 그토록 이슬람에 반대하는 걸까요. 그걸 알려면 두 종교의 뿌리와 역사, 그리고 신학적 교리를 짚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두 종교의 관계가 보이니까요.



◆이삭의 후손, 이스마엘의 후손=4000년 전 아담의 후손인 아브라함에게는 먼저 자식이 둘 있었습니다. 하녀인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과 만년에 본처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삭입니다. 나중에 상속권 등을 놓고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중동지역으로 떠나갑니다. 그들의 후손이 아랍 민족이 됩니다. 반면 이삭의 후손은 유대 민족이 됩니다. 2000년 전에 태어난 유대인 예수가 이삭의 후손입니다. 1400년 전에 태어나 이슬람교를 창시한 아랍인 무하마드(모하메트)는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이렇게 민족이 갈라지고 종교가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뿌리는 하나입니다.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아브라함을 자신의 조상으로 꼽으니까요. 그러나 이삭에게 이스마엘은 ‘배다른 형제’이고, 이스마엘에게 이삭도 ‘배다른 형제’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상대를 바라볼 때, 지금도 그런 시선은 강하게 깔려있습니다.



◆삼위일체와 일위일체=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믿습니다. 성부(聖父)와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하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성스러운 영이 하나라는 거죠. 그래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입니다.



 그런데 이슬람은 다릅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습니다. 대신 ‘일위일체(一位一體)’를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알라)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러니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따로 자식을 둘 필요가 없다. 구원이 필요하면 자식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면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메시아(구세주)로 보질 않습니다. 성서 속의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 모세처럼 예수도 한 명의 선지자로 볼 뿐입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하마드도 ‘마지막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갈라집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슬람교도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사실을 신앙적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도 상당 부분 수용합니다. 거기에 코란(꾸란)까지 더해서 말입니다. 무슬림(이슬람 교인)은 선지자로서 예수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메시아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역사 속의 갈등=기독교와 이슬람교는 1300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 갈등을 겪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세의 십자군 전쟁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런저런 테러와 이라크 전쟁, 9·11 사태 등으로 갈등의 골이 깊습니다. 문제는 역사 속에 담긴 ‘종교간 갈등의 DNA(유전자)’를 현대인도 자신의 종교를 통해 공유하려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일부 성직자는 그걸 자꾸 부추겨서 재생산하기도 합니다.



 한기총에선 “이슬람 금융의 수익 일부(2.5%의 자선단체 기부금)가 테러 자금으로 들어갈 것”이라며 수쿠크법 도입에 반대합니다. 그런데 개신교계 내부에선 “이 기부금이 국내 고아원 등 불우시설에 투입되면서 수혜 단체의 이슬람 영향화, 혹은 향후 이슬람 포교화에 대한 우려가 개신교계가 안고 있는 실질적 고민”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개신교계의 자신감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슬람 금융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추세”라고 말합니다. ‘낙선 운동’ ‘대통령 하야’를 거론하는 정치적 사전봉쇄책으로 개신교계가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이건 오히려 소극적인 대응입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이슬람에 대한 개신교의 적대감과 두려움’을 볼 뿐입니다. 한국 개신교계가 진정 자신감이 있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대응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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