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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의 대학살, 용서받지 못할 만행”…부족들 “카다피에 피의 보복”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가 본 리비아 사태





리비아 동부 지역 벵가지에서 시작된 개혁 요구 시위가 내전 수준으로 악화되고 서부 지역인 수도 트리폴리까지 확대된 배경에는 부족들의 분노가 깔려 있다. 외교관들과 고위 관리들의 이탈 등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최고지도자 지지 세력의 분열 현상이 20일부터 갑자기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17일 벵가지에서 시위가 시작될 때만 해도 사태는 국지적이었다. 1300㎞ 떨어진 수도 트리폴리는 평온했다. 그러나 20일 반정부 투쟁이 갑자기 악화하면서 사태가 전환점을 맞았다. 시위대가 무장까지 하고 벵가지와 그 일대를 장악했고, 아무 일 없던 트리폴리에서도 시위대가 방송국을 점령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날 지도부의 붕괴도 시작됐다. 최대 부족의 하나인 와르팔라 부족이 “카다피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주와야 부족도 원유수출로를 차단하겠다며 진압 중단을 요구했다. 부족들이 움직이자 50여 명의 이슬람지도자가 뒤이어 학살 중단을 촉구했다. 이어 아랍연맹(카이로)·인도·중국 주재 대사를 비롯한 고위 외교관들이 잇따라 카다피에게 등을 돌렸다. 21일에는 전투기 2대에 나눠 탄 공군 조종사 4명이 인근 몰타로 망명했다. 유엔 주재 부대사에 이어 미국·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 대사가 줄지어 물러났다. 정권 핵심 인물인 압둘 파타 유니스 알우바이디 내무장관도 23일 “무고한 국민의 죽음을 두고만 볼 수 없다. 군도 국민 편에 서야 한다”며 자신이 21일 사임했다고 CNN에 밝혔다.











 리비아의 정권 기반 세력이 이처럼 무너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부족들의 카다피 반대 결정 때문이다. 이집트 알아흐람 전략연구소 이마드 가드 정치담당은 “외국인 용병을 투입한 것이 카다피의 최대 실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단·말리·차드 출신의 외국인 흑인 용병을 국내 시위 진압에 투입한 것을 리비아 국민은 용서받지 못할 조치로 받아들여 분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비아인은 아랍 세계에서도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그 자존심의 뿌리는 부족 전통에 있다. 타 부족 출신이 자신의 부족원을 해치면 ‘같은 형식으로 같은 숫자의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그런데 타 부족인 카다파 출신인 카다피가 외국인 흑인 용병을 동원해 자신의 부족원을 학살했다면 절대로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현대사회에선 부족 근거지뿐 아니라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부족원이 해코지를 당해도 마찬가지다. 그전까지 조용했던 수도 트리폴리에서 20일 갑자기 폭동이 발생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곳에 살고 있던 동부 출신 부족원들이 자신들의 근거지인 벵가지 등에서 자기 부족원들이 외국인 용병에게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복수를 다짐하며 봉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리비아 상황은 카다피에게 충성하는 카다파가 주와야·와르팔라와 전면적인 부족전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 되어 가고 있다. 14개 대부족이 존재하는 리비아에서 이 부족들은 3대 부족이다.



 사실, 카다피가 22일 전국에 중계된 연설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연단을 치면서 75분 동안 광분한 이유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바이아(전통적인 충성맹세)’를 했던 부족들이 과격 진압 뒤 이처럼 등을 돌린 데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반기를 든 부족에 대해 ‘피의 작전’이라고 명명한 보복 작전을 추진하고 있다. 피가 피가 부르는 악순환의 부족 간 보복 전쟁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중동·아프리카학과) amirseo@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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