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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졸업생들, 갈 곳이 없습니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1923년 개벽사에서 창간한 여성 잡지 『신여성』에서는 3~4월이면 여학교 졸업생들의 소감이나 이들에게 기성 지식인들이 당부하고자 하는 말들을 싣곤 했다(한국도 1961년까지는 일본식으로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졸업식이 3월에 있었다). 이러한 글들은 당시 여학생들이 졸업 후 겪게 될 고통과 번민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진명여고보를 졸업한 한 여학생의 글은 그러한 고민들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것. 유학을 가자니 학비가 없고, 조선 내에는 아직 여학생들을 위한 전문학교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사회로 진출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것. 당시 고학력 여성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이 몇 개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모집 인원도 매우 적었다. 세 번째로 부모가 ‘이제 졸업했으니 어서 시집이나 가라’고 성화를 하는 것. 그동안 공부를 핑계로 미룰 수 있었던 혼인 문제가 다시금 여성들의 발목을 잡았다. 즉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졸업 후 진로라는 것이 진학도 취업도 아닌, 마지못해 하는 결혼밖에 없었던 것이다(‘교문을 나서면서-갈 곳이 없습니다’, 『신여성』, 1924.3).



 그런데 재일본 조선인 유학생들이 만든 잡지 『학지광』을 보면, 유학을 다녀온다 해도 미래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1910년대 중반부터 “졸업생 제군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들어가서 곧 경천동지의 일대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나는 도리어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그 경우에 대하여 동정하노라”(‘졸업생에게 하(賀)하노라’, 『학지광』, 1916.9.)라며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와도 조선으로 돌아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유학생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였다. 그들에게 권유된 사업은 지방에 묻혀 농촌을 개량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문화보급에 힘쓰는 것 정도였다. 일제의 식민화가 진행될수록 고학력 조선인들이 사회에 진출할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러니 졸업은 성취와 희망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미래로 가는 관문이었다.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도 도통 가벼워 보이질 않는다. 유학뿐 아니라 국내 대학원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진학할 엄두를 못 내는 한국 고등교육의 현실, 고질화되어 버린 청년실업 앞에 많은 젊은이가 절망하고 있다. 오죽하면 요즘 여대생들이 1920년대의 저 어려운 진학난·취업난의 현실 속에서도 거부하려 했던 ‘마지못한 결혼’을 그나마 ‘전망 밝은 진로’라 여기며 ‘취집(취직+시집)’하려 하겠는가.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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