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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91) 그래, 지갑을 잃어버리자









“아이쿠!” 싶었습니다. 지갑이 없더군요. 안주머니에도, 뒷주머니에도 없었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새벽이었습니다. 중국 출장차 인천공항으로 가던 버스 안이었죠. 급히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어젯밤에 동네 이용원에서 머리를 깎을 때 두고 온 것 같아. 이따가 가서 한번 확인해 줘”라고 아내에게 부탁했죠.



아내는 “회사 마치고 저녁에 가볼게”라고 답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영 찜찜하더군요. ‘지갑이 없으면 어떡하지? 돈은 얼마 없지만 카드도 있고, 신분증도 있는데. 그걸 일일이 신고해서 다시 발급받으려면…. 어휴! 정말 번거롭겠네. 어쩌다 지갑을 잃어버렸지?” 짜증이 막 올라오더군요.



그때 ‘오늘 하루’가 빤히 보였습니다. ‘공항에 가서 동료에게 돈은 좀 빌리면 되겠군. 그런데 저녁까진 계속 이렇게 찜찜하게 지내겠네. 지갑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돼야 마음이 놓일 테니까. 어쩌나? 오늘 하루는 일도 좀체 손에 잡히지 않을 텐데. 이렇게 찜찜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 하니 참 고달프겠군. 어휴~’



그런데 잠시 후에 이런 생각도 올라오더군요. “왜 내가 그런 걱정을 하지? 어차피 오늘 저녁이 돼야 확인이 될 텐데. 굳이 저녁까지 이렇게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갈 필요가 없잖아. 그럼 어떡할까? 그래, ‘지갑 생각’을 잊어버리면 되겠네.”



사람들은 주로 여기서 막힙니다. “말이 되느냐? ‘지갑 생각’이 잊는다고 잊혀지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의 힘’을 알면 쉬워집니다. ‘지갑 생각’을 잡는 것도 내 마음의 힘이고. ‘지갑 생각’을 놓는 것도 내 마음의 힘이죠. 우리는 어떠한 힘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겁니다. 잡는 힘이 세면 잡는 거고, 놓는 힘이 세면 놓는 겁니다. “놓고 싶은데 안 놓아져. 어떡해야 돼?”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실은 자신이 더 강하게 잡고 있는 겁니다.



“지갑 생각을 까먹어버려야지”하고 팍! 잊어버렸죠. 그랬더니 놀랍게도 까먹어지더군요. 그냥 팍! 잊어버리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오후에도 지갑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공식 만찬 행사가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갑 생각이 나더군요. 그러면서 “어? 지갑이 정말 없으면 어떡하지?”하며 걱정하는 마음이 올라오더군요.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는 “이용원에도 가봤는데 지갑이 없더라”는 겁니다. 전화를 끊고서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아이, 참. 정말 번거롭게 생겼네.” 짜증이 나더군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왜 짜증을 내나? 왜 마음이 불안한가?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나?” 그랬더니 보이더군요. 무엇을 잡고 있는지 말입니다.



"아하! 나는 ‘지갑은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라는 철칙을 세우고 있구나. 그런데 잃어버릴 조건이었다면 잃어버리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거잖아. 그럼 어떻게 할까. 그래, 지갑을 잃어버리면 되겠네.” 그렇게 마음을 먹었죠. “오케이, 지갑을 잃어버리자.” 그렇게 지갑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마음이 쫘~악 가라앉더군요. 오히려 제 안의 집착과 착각을 보게 해 준 ‘분실된 지갑’이 고맙게도 느껴졌습니다. 10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는 “작은 방 책상 너머에서 지갑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의 반응이 흥미롭더군요. 예전 같으면 “아, 살았다. 정말 다행이다. 괜히 마음고생만 했네.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 식의 반응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꽤 담담하더군요. “으~응, 그래. 고마워” 정도였죠.



그때 절감했습니다. 이래야만 돼, 저래야만 돼 하고 세워놓은 나의 철칙과 집착이 고통의 뿌리임을 말입니다. 붓다는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如來)를 보리라”고 했죠. 철칙이 철칙이 아닐 때 여래를 본다는 겁니다. 또 예수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분실할 뻔한 지갑이 그 뜻을 일러주더군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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