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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 성서 속 숨은 세계 못 찾으니 헌금·성공 얘기만 하지 …”





『설교란 무엇인가』 펴낸 정용섭 목사



정용섭 목사는 “설교자는 바둑판의 해설자와 같다. 수가 보여야 바둑 해설이 가능하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성서의 숨은 길을 읽지 못하면 엉뚱한 얘기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목회자의 설교는 흔히 ‘성역(聖域)’으로 통한다. 한국 교회 안팎에서 설교를 향한 비평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걸 공개적으로 도마 위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에 ‘창’을 겨누는 목사가 있다. 바로 정용섭(58·대구 성서아카데미 원장·샘터교회 담임) 목사다. 그는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설교의 절망과 희망』 등 일련의 설교 비평서를 내며 유명 목사들의 설교를 신랄하게 꼬집어왔다. 정 목사는 TV에 출연해 개그맨 같은 웃음을 던져주던 대전중문침례교회 장경동 목사의 설교를 ‘허무주의 영성’이라 규정했고, 서울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의 설교에 대해선 ‘예수천당, 불신지옥 패러다임의 카리스마’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심지어 정 목사는 자신의 설교마저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정 목사가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설교란 무엇인가』(홍성사)다. 그는 이번 책에서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처럼 한국 교회 강단에 설교가 넘쳐나지만 살아있는 말씀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21일 서울 합정동의 한 책방에서 그를 만났다. 기원 실력으로 4급, 인터넷 바둑에선 1단이라는 정 목사는 설교를 바둑에 빗댔다.



-설교가 왜 바둑과 닮았나.



 “바둑의 기보(碁譜)는 텍스트다. 성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숨어있는 세계가 있다. 바둑 해설자도, 성서 해설자도 그걸 포착해서 찾아내야 한다.”



-설교자가 그걸 모르면 어찌 되나.



 “그럼 엉뚱한 얘기를 하게 된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수를 읽지 못한다. 그런 바둑 해설자는 바둑 기보는 읽지 않고 상금이 얼마라든지, 날씨가 어떻다든지 엉뚱한 얘기만 하는 거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성서 속의 숨은 세계를 찾아내지 않고 헌금이나 물질적 부, 세상 속의 성공 등 엉뚱한 이야기만 하게 된다. 그래서 바둑의 착점(着點)이 중요하다.”



-착점이라면.



 “바둑판은 19줄×19줄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읽는 게 바둑 해설자의 몫이다. 성서도 마찬가지다. 성서는 노출돼 있지만 동시에 은폐돼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구는 성서에도 해당된다. 저 역시 설교를 하는 사람이다. 또한 간혹 설교를 듣는 사람이기도 하다. 성서에는 훨씬 더 근원적인 길이 있다. 그런데 ‘성서라는 바둑판을 앞에 두고 왜 저렇게밖에 이야기를 못하는 걸까’란 생각이 드는 설교가 꽤 있다.”



-왜 그런가.



 “바둑으로 치면 설교자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바둑 해설자는 다르다. 수 하나만 보고도 무궁무진하게 풀어낸다.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프로기사 이세돌이 바둑을 둘 때, 그걸 더 넓게 보는 사람은 ‘이세돌의 바둑’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결국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이 프로가 되지 못하고 아마추어 동호회 수준의 바둑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당신이 비판했던 설교에 열광하는 교인도 많다.



 “천국과 지옥을 내세워 위협하거나, 세속의 성공만 강조하는 설교는 성서의 길과 어긋난다. 바둑처럼 신앙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 아마추어 동호회 수준의 설교자는 종종 하수를 농락한다. 기복주의 신앙, 기도 만능주의 신앙이 그런 거다. 그런 설교자는 교인들이 바둑을 배우는 것도, 기보를 익히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목사의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도 만능주의는 왜 문제가 되나.



 “그건 현실이 아니다. 실제 기도한다고 다 되지 않는다. 성서에는 기도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미 담겨 있다. 그게 ‘하나님의 침묵’이다. 오히려 이것이 성서에 담겨 있는 가장 깊이 있는 영성이다. 그렇다고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기도란 나의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찾는 거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걸 찾는 거다. 그래서 기도가 두려운 거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욕구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서에선 설교자를 지휘자에도 비유했다.



 “지휘자는 악보의 숨은 세계를 드러내야 하고, 설교자는 성서의 숨은 세계를 드러내야 한다. 그 점에서 닮았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정용섭 목사=1953년 서울 출생. 서울신학대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뮌스터대를 거쳐, 1993년 계명대에서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풍제일성결교회(1986~97), 영천성결교회(1998~2000) 담임목사, 계명대·대구대·협성대 강사를 지냈다. 저서로 『말씀신학과 역사신학』 『땅과 하늘』 『사람 사랑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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