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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울릉도는 조선 땅” … 안용복 활동 자료 첫 완역




지난 17일 독도사료연구회가 『죽도고』완역본 발간을 기념해 세미나를 연 뒤 회원과 경북도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김병렬 회장, 그 왼쪽은 경북도 김남일 독도수호대책본부장이다. 경북도는 연구회에 연간 4000여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안용복의 활동이 기록된 1800년대 일본 자료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했습니다. 울릉도 영유권 문제가 등장합니다. 단순 번역이 아니라 분야별 전문가의 토론을 거쳐 자구 하나의 의미까지 분석한 게 특징입니다. 일본에서도 아직 이 자료는 전체적으로 비교 주석이 달리지 않았어요.”

 국방대 김병렬(55·국제법) 교수는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의 지난 1년 활동을 이렇게 요약했다. 일본 자료는 돗토리번 번사 오카지마 마사요시가 1828년 편찬한 『죽도고(竹島考)』란 책이다.

 김 교수는 1년 전 발족한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독도에 관한 국내외 자료의 발굴·조사 등 독도를 객관적이고 총체적으로 연구하자며 조직된 모임이다. 연구회에는 국제법·정치학·인류학·일본근세사 등 중앙과 지역의 분야별 전문가와 교사 등 10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독도사료연구회는 지난 1년 첫 연구 주제를 ‘안용복 활동의 복원’으로 정했다. 안용복은 조선시대 숙종 때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에서 주장해 일본의 인정을 끌어낸 인물이다.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잡혀갔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당당히 외쳤다. 1695년 일본은 안용복의 주장을 받아들여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고 울릉도 업무를 관할하던 대마도에 통보했다. 하지만 대마도는 그 사실을 조선에 알리지 않고 ‘묵살’했다. 울릉도를 차지하고 싶어서였다. 1696년 안용복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안용복은 울릉도가 조선 땅인데 왜 일본인이 계속 들락거리냐며 강력 항의했다. 울릉도는 당시 조선이 섬을 비우는 공도 정책으로 관리가 허술했다. 일본은 안용복이 돌아간 뒤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종합보고서를 냈다. 그리고 100여 년 뒤 오카지마 마사요시는 이 종합보고서를 일본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죽도고』를 썼다. 붓으로 쓴 1800년대 일본어 원문은 동북아역사재단 정영미(45) 연구위원이 활자로 옮겼고 이는 다시 현대 일본어로 번역됐다. 이후엔 분야별 토론을 거쳐 우리 말로 옮겨졌다. 독도와 울릉도 문제 전반을 이해해야 해석할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이 많아서였다. 김 교수는 “특정 분야 학자 한 사람이 해내기엔 어려움이 많은 자료였다”고 말했다.

 1905년 이전 일본 자료에 등장하는 죽도는 울릉도를 지칭한다.

 정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일본은 당시 죽도와 울릉도를 별개의 섬으로 혼돈한 사실을 알게 됐다”며 “죽도고에 언급된 울릉도 영유권은 곧 독도 영유권과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에 가지 않으면 독도에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독도사료연구회는 이밖에 안용복과 관련된 다른 자료들도 분석해 별도의 연구보고서도 펴냈다. 또 올해 2년차에는 1726년 쓰시마번에서 나온 『죽도기사(竹島紀事)』를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송의호 기자

독도사료연구회 회원은…

김병렬 국방대 교수(국제법, 회장), 김호동 영남대 독도연구소 연구교수(역사학), 유미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책임연구원(정치학), 정영미(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일본근세사), 여수경 한빛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인류학), 최은석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문책임연구원(일본사), 임정진 경산고 교사(역사학), 이재완 예천군 학예사(민속학), 이소리 경북도 독도수호과(일본교육사), 류진환(안용복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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