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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우리집 가훈은 너무 촌스러워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예전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집에 온 아들이 시무룩하게 툭 내뱉었다. ‘가훈이 졸라 촌스럽다’는 것, 다른 집 가훈은 저마다 그럴듯한데 우리 집 가훈은 한마디로 ‘꽝’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 가훈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자’다. 내가 봐도 조금 촌스럽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무척 아껴왔다. 누구를 좋아할 수도,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존경하고 또 존경받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의 이 같은 주장은 아이들의 불평에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끔 생의 가치나 삶의 모토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며 살고 있다.

 법무부가 2년 전 시작한 ‘가정 헌법 만들기’ 운동에 참여한 가정이 올 들어 4000가정을 넘어섰다고 한다. 가정 헌법은 21세기형 가훈. 그러나 가정 헌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적당한지 고민하게 하는 황당한 항목도 있다. ‘화장실 변기 커버는 사용 후 반드시 내려놓는다’ ‘엄마 얼굴에 대고 방귀 뀌지 않는다’ 같은 것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아빠는 아이돌 그룹에 관심을 갖고 노래를 외워 부른다’는 내용도 등장했다. ‘아빠가 우리들 관심사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아이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아빠 항목 중에는 ‘절대로 보증을 서지 않는다’는 경제 조항도 있었고, ‘고부 갈등에서 엄마 편이 돼 준다’ ‘리모컨을 빼앗지 않는다’는 색다른 조항도 있었다. 엄마 조항으로는 ‘잔소리를 자제한다’ ‘공과금은 기한 내에 낸다’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부부 조항에는 ‘한 달에 한 번 서로 얼굴에 팩 해주기’ ‘카드명세서 서로 공개하기’도 등장했다. 하지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같은 딱딱한 한자성어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가훈을 정할 때는 아버지의 의견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주장이 절대적이다. 지난해 만들어진 가훈에서 자녀 준수 조항은 36%지만 부모는 48%였다. 2년 전 가훈에선 ‘사랑’이 45%로 가장 많이 등장했으나 지난해는 ‘소통(43%)’이 대신했다. 가족 간 소통이 문제가 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살아가며 나는 우리 집 가훈에 대해 점차 자신감을 잃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받기가 가장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삶의 지혜였다. 그래서 합리화의 한 방편으로 나는 가훈과는 별도로 삶의 모토를 하나 정해 스스로 담금질하고 있다. 나의 삶의 모토는 ‘꿈.사.적.고.별’이다.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며, 이길 수 없는 적과 맞서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딸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 왔다. ‘라만차의 사내’에 등장하는 글귀다. 나는 이 구절에 걸맞게 지금까지 스스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자 몸부림쳐 왔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진다. 길을 두고 산으로 간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이 오히려 얼마나 아름다운지, 고독하게 혼자 가 본 사람은 안다. ‘꿈.사.적.고.별’ 쓸쓸할 때 혼자 읊조리는 나만의 맨트라(mantra)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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