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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딛고 서울대 합격한 충남외고 김찬기군





넘지 못할 장애 없다 이젠 경제정책전문가 도전



충남외고 안덕규 교장은 “찬기군은 항상 명랑하고 의지력이 강하며 모든 일에 적극적인 학생”이라며 “자신은 불편한 여건인데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달라 미래의 지도자상에 부합하는 인재”라고 극찬했다. 김찬기군이 충남외고 교정에서 밝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조영회 기자]



몸이 좀 불편할 뿐 장애는 꿈을 이루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충남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김찬기군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충남외고는 올해 4명을 서울대에 보냈다. 우수인재들이 모인 외고에서 그것도 장애를 가진 김군이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도전정신과 긍정적인 생각의 힘’이 컸다. 입학 전 잠시 학교를 찾은 김군을 만났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장애 1급 안고 내신·수능 1등급 오르다



김찬기군은 척수성 근위축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세상에 태어났다. 지체장애 1급. 기적이 있기 전까지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불편한 몸이 김군의 꿈과 자유로운 생각까지 매어 놓지는 못했다. 충남외고 입학 후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높은 점수를 받아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김군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는 양손. 연필을 들고 간신히 글을 써내려 갈 정도다. 이마저도 힘이 없어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없다.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한다. 두어 시간 있으면 꼭 휴식을 취해야 한다.



 불편한 몸에 근력마저 떨어져 김군에게 공부하는 일은 남들의 몇 배는 고된 일이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수업을 게을리 하거나 빠진 적이 없다. 수업태도도 성실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항상 모범학생으로 통했다.



 학교에서는 휠체어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쉽게 쌓이는 피로를 풀어가며 공부했다. 기숙사에 와서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힘 없는 손이었지만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생존율 2% 목숨건 당당함 … 불가능은 없었다



친구들은 물론 어머니에게 있어 김군은 ‘두려움 없는 아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외고에 입학하기 전 척추측만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척추가 휘었기 때문이다. 생존률 2%. 어머니와 아버지가 의사 말을 듣고 말렸다. 의사도 조심스러웠다. 김군의 호흡이 정상인 보다 좋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수술하겠다는 김군의 당당함에 모두가 당황했다. 김군은 예정된 수술시간을 두 배 이상 넘긴 8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나왔다. 부모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지만 마취에서 깬 김군은 해맑게 웃었다.



 김군은 용변 보는 일 말고는 세상에서 못하는 일이 없었다. 활달한 성격 탓에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신은 물론 친구들조차 김군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모든 걸 함께 했다.



 골키퍼를 옆에 두고 축구를 하거나 문방구에서 오락과 뽑기를 하고, PC방도 함께 다녔다. 학년이 바뀌고 새 친구를 사귈 때는 김군이 먼저 말을 걸어 서먹함을 없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유창한 말에 친구들은 언제나 김군을 여느 아이처럼 대해줬다.



 뛰어난 리더십은 교사와 친구들에게 강한 존재감을 심어줬다. 교내 동아리인 영어토론동아리와 영자신문동아리를 만들어 경제 관련 토론을 주도했다. 외고생답게 영어토론으로 실력을 높였다. 영자신문을 만들어 다양한 소식을 교내·외에 알렸다. 7명에서 시작한 동아리는 후배가 물려 받아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못할 게 없다. 실패하더라도 계속 도전하면 언젠간 이뤄진다’는 도전정신과 긍정적인 생각이 김군이 꿈꾸는 모든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학교·어머니·친구는 든든한 지원자



김군에게 있어서 만큼은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불편한 몸으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친구와 선생님이 도왔다.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앞서 책을 미리 펴주고 필기도구를 챙겨줬다. 학교는 부모와 함께 기숙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배정했다.



 일과시간 후에는 어머니가 함께 했다. 어려서부터 손발이 되어준 어머니는 그에게 있어 정신적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몸이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어머니는 “세상에 나가면 누구도 네 옆에 있을 수 없다. 인재가 돼 네가 어느 위치에 있다는 걸 알려야 사람들이 알고 너의 지원자가 돼 준다. 그래야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강인함을 심어줬다.



 보통 아이들과 달리 쉽게 힘들어 하고 지치는 아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지만 어머니마저 약해질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백정숙(천안시 불당동)씨는 “그동안 자신의 성공을 위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이제는 찬기가 사회에서 받은 만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아달라고 이야기한다”며 “찬기가 쌓은 소중한 경험과 재능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고 용기와 꿈을 심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찬기군은 “경제를 복지와 연관시켜 소외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도와줄 수 있는 ‘경제적 복지를 실현하는 재정정책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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