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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외교, 박근혜 특사 카드를 활용하라

칠순 잔치(2월 15일)를 막 끝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17일 밤 지극한 ‘중국 사랑’을 또 한번 과시했다. 류훙차이(劉洪才) 주북한 중국대사와 외교관·기업인·유학생을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으로 불러 정월대보름(중국 이름은 위안샤오제(元宵節)) 음악회를 연 것이다. 우리로 따지면 ‘예술의전당’으로 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과 미국 측 인사들을 초청해 부활절 위로공연을 한 셈이다.

이 자리엔 김 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을 비롯해 이영호·김영춘 차수,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경희·장성택 부부, 김기남·최태복·문경덕·김영일·김양건 등 기라성 같은 권력실세들이 총출동했다. 공연내용은 중국 일색이었다. 한국의 춘향전과 비슷한 중국 가곡 ‘량주(梁祝)’에다 13세 천재소년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황허(黃河)’ 가락이 울려 퍼졌다. 여기에 북·중 혈맹을 강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TV드라마 ‘마오안잉(毛岸英)’ 주제곡도 여성 6중창으로 불려졌다. 주북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실린 글과 사진을 보노라면 ‘현대판 사대(事大) 외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주체’의 화신이라는 김 위원장이 중국을 향해 ‘친절 접대 모드’를 과시한 이유는 뭘까. 그는 3년 전인 2008년 3월에도 중국대사관을 방문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탄생 110주년 사진전’이란 명분을 달아서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2006년 핵실험 강행 뒤 생긴 양국 간 불신의 골을 메우고 경제지원을 더 얻기 위해서였다.

그래선지 김정일의 이번 행보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두 차례 중국 방문을 전후해 천안함 피격(3월)과 연평도 포격(11월)이 터졌기 때문이다. 미 정보 당국은 북측이 3차 핵실험 또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김정일 체제로선 3대 후계 안착과 ‘강성대국’ 과시를 위해 중국의 지원이 음양으로 절실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대남 교란·도발에도 중국의 암묵적 협조가 아쉽다.

한반도엔 이제 달갑지 않은 전선(戰線)이 굳어가고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치 구도다. 냉전시대의 해묵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쌓아온 경협 외교가 북·중 혈맹논리에 맥없이 나가떨어지고 있다. 김정일 체제의 한·중 이간책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G2로 부상한 중국의 미국 견제심리도 단단히 작용하고 있다.

한·중 라인에서 뛰어온 고참 외교관들은 “수교 이후 18년간 지금처럼 갑갑한 적이 없었다”고 토로한다. 중국 측이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를 비롯한 우리 측 인사들을 만나는 걸 피하는 눈치까지 보인다는 얘기다. 서울·베이징에선 대중 외교가 겉돌고 있다는 뒷담화가 무성하다.

이젠 더 이상 실기(失機)해선 안 된다. 대중 외교의 결기와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어떻게 개척해온 한·중 관계인가. 지난해 한·중 양국은 교역액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 입장에선 한국이 수출 4위, 수입 2위의 통상파트너다. 한국은 중국이 수출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소재들을 공급하는 나라다. 우리 기업들은 서방 기업들이 꺼리는 첨단기술 제공까지 앞장서지 않았는가.

북한에 북·중 혈맹논리가 있다면 우리도 ‘위안(元)화 동맹’ 논리를 내밀 수 있다. 대중 교역 규모는 이미 미·일을 합친 것보다 더 커졌다. 동아시아 각국이 국제분업체계를 통해 ‘위안화 블록(bloc·연합)’으로 엮여가는 현실을 바탕으로 중국 측을 설득해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중 관계와 한·미동맹의 충돌 부분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예컨대 미사일방어(MD) 체계 가입을 미루고 한·미 군사훈련 수준을 낮은 단계로 조정하는 것이다. 북한 붕괴를 유도해 흡수통일을 꾀한다는 중국 측 오해도 불식시켜야 한다.

하지만 한·중 외교의 최대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사람’이다. 중국 지도부와 직통으로 통할 거물급 인사가 집권당이나 정부에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어가 능통한 박근혜 전 대표를 특사로 뛰게 하는 건 어떤가.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2008년 1월 베이징을 방문했다. 중국에 대한 관심과 공부도 남다르다. 그가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이나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習近平·습근평) 국가부주석과 신뢰 관계를 쌓는다면 한·중 채널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앞장서기에 대중 외교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국을 활용할 인사와 역량을 키워야 할 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나마 가장 빠르다.


이양수 편집국장 대리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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