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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그리움을 위하여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선생님 문학의 뿌리인 어머니 만나 뵙고 싶어 더욱 서두르셨으리라.” 한 달 전, 고(故) 박완서 선생을 떠나 보내는 조시(弔詩)에서 정호승 시인은 그분의 어머니를 ‘선생님 문학의 뿌리’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어찌 문학만일까?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는 ‘삶의 뿌리’인 것을···.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로 어린 남매를 키워 대학까지 보낸 억척 어머니, 6·25전쟁 통에 금쪽같은 아들을 잃고 산송장처럼 되어버린 홀어머니··· 그분의 고통스러운 삶은 그대로 박완서 문학의 탯줄이었다. 좌우의 이념 대립 속에서 방황하던 끝에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인민군의 총에 목숨을 잃은 엘리트 오빠의 죽음은 스무 살의 선생에게도 ‘영혼의 성장을 멈추게’ 할 만큼 깊고 큰 상처를 남겼다.



 “엄마는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고 가르치셨지만, 좋은 초등학교에 날 입학시키려고 엉뚱한 주소지를 외게 했어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던 어머니의 일탈(逸脫)은 나중에 딸에게서도 발견된다.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한 선생은 미군부대 인사담당자에게 ‘영문과 학생’이라고 속여 일자리를 얻는다. 공직에 나섰더라면 인사청문회장의 서슬 퍼런 도덕군자들로부터 위장전입과 허위 학력의 인격파탄자로 내몰렸을 일이지만, 선생은 부끄러운 흔적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전쟁의 혼란 속에 피란 갈 기회마저 잃은 모녀는 서울에 남아 ‘낮에는 민주주의가 되고 밤에는 사회주의가 되는 세상’을 경험해야 했다. 선생이 평생 이념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실을 투시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몸소 겪은 이념 갈등의 비극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철부지들이 이데올로기의 날것에 취해 사나운 목소리를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념의 도그마에 갇힌 외눈박이들은 선생을 수구(守舊)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격동의 시절에도 선생은 거리와 광장에서 촛불을 켜든 적이 없었다. 오직 문학으로 시대의 모순을 아파했다. ‘나목’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는 전쟁으로 파괴된 가정과 인격들의 내적 갈등을 통해 민족의 고뇌를 풀어냈고, ‘휘청거리는 오후’ ‘지렁이 울음소리’에서는 산업화의 신화와 표피적(表皮的) 감각문화에 점령당한 시대상(時代相)을, 일그러진 사랑의 조건을, 그리고 물신(物神)의 강림을 꿈꾸는 도시민들의 누추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우리들 삶의 속살을 성찰하도록 이끌었다.



 88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을 때,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과 아들을 앞세운 선생은 절망 속에서 십자가를 내던지며 신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임을 속으로 삭이면서(‘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과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남편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촉촉이 담아냈다.



 숨 막힐 듯한 가부장제(家父長制) 하의 시집살이와 일제의 암흑기, 광복 직후의 혼란기를 다 겪어내며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혈육까지 잃은 선생 모녀의 삶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신산(辛酸)의 역사, 바로 그것이었다.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순국한 장병의 어머니들은 지금도 그 쓰라린 역사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선생의 연작 ‘엄마의 말뚝’은 6·25 때 맏아들과 맏딸을 잃고 고향을 떠나온 내 어머니의 삶 그대로다. 두 돌배기 막내인 나를 등에 업고 한반도 북단에서 남단까지 수천 리를 걷고 또 걸어 피란을 내려오신 어머니, 한겨울에도 차디찬 우물물을 길어 손빨래를 하며 온 가족의 옷을 손수 지어 입히시던 그분의 입에서 ‘힘들다, 귀찮다’는 따위의 말이 새어 나오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 내 생애 ‘최초의 2인칭’인 이 애틋한 부름말(呼稱)을 나는 피멍 든 가슴처럼 아파오는 그리움 없이는 차마 혀끝에 올리지 못한다.



 어머니를 문학의 뿌리로 삼았던 고 박완서 선생은 그 자신이 한국 현대문학의 어머니가 되어 절절한 그리움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 고단한 삶에 지친 이 땅의 아들딸들에게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삶의 경이로운 가치를 일깨워준 자애로운 모성(母性)···. 그는 언젠가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라고 읊었다(‘그리움을 위하여’). 그리움을 축복으로 남긴 선생께 머리 숙여 감사한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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